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이 21일 중국 방문 일정을 끝으로 8일 간 인도와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일본, 한국, 중국을 차례로 방문하는 아시아 6개국 순방을 모두 마쳤다. 이번 순방은 북한 핵문제와 반국가분열법에 대한 중국과 대만 대립, 한국과 일본 간 독도 분란 등 극동 3개국이 이상기류에 휩싸인 가운데 이루어져 관심을 모았으나 구체적 성과를 내기 위한 본격 외교라기 보다는 탐색전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라이스 장관은 순방 초기 북한과 양자회담 가능성을 일축했다가 한국에서는 6자회담 틀 내의 양자회담 수용 가능성을 내비치고 북한을 주권국가로 인정하는 발언후 며칠 만에 안보리 회부를 시사하는 압박을 가하는 등 속내를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나 라이스 장관은 짧은 장관 재임기간에도 불구하고 이번 순방에서 현안 관련 국가마다 당근과 채찍을 적절히 구사해 오랜 백악관 안보보좌관 경력으로 쌓은외교 현안에 대한 지식과 외교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한 것으로 평가된다.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 회담 = 북한을 6자회담에 다시 끌어내는 문제는라이스 장관 순방 내내 가장 큰 관심을 모은 최대 의제였으나 뚜렷한 진전을 이루지는 못했다. 라이스 장관이 순방에서 밝힌 북핵문제 원칙은 6자회담이 북핵문제를 해결할 수있는 가장 좋은 틀이라는 점을 재확인하고 북한에는 6자회담 복귀를 촉구하고 일본과 중국 등에는 6자회담 조기 개최를 위해 더 노력해줄 것을 요청하는 것이었다. 라이스 장관은 이번 순방 내내 북한에 6자 회담 복귀를 촉구하며 "북한이 주권국가라는 사실을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북한을 공격하거나 침략할 의도가 없다"고 말하는 등 북한을 6자 회담으로 끌어내기 위한 당근을 내놓았다. 그러나 그는 이와 함께 '폭정의 전초기지'라는 표현에 대해 사과하라는 북한의요구에 "북한이 주제를 변화시키려 하고 있다. 나는 그들이 주제를 변화시키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라며 사과 불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라이스 장관의 이 같은 발언들은 미국이 과거에도 누차 밝혀온 입장과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북핵문제가 미국 외교의 핵심과제로 떠오른 가운데 국무장관이 해당지역 순방에서 직접 천명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특히 그는 중국 순방 마지막 날인 21일 베이징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하지 않는다면 다른 선택을 고려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라이스 장관은 북한이 계속해서 6자회담을 거부한다면 어떤 조치를 취할 것인지에 대해 "우리는 다른 선택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 국제기구에 다른 선택이 있다는것을 모두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순방 기간에 북한에 대해 유화적 태도를 보인 그가 막판에 내놓은 이 발언은 다른 선택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정을통한 제재수단 강구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여 북한의 반응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부시 대통령 1기 행정부가 해결에 실패한 북핵문제를 떠안은 라이스 장관이 며칠 간의 짧은 극동 3개국 방문에서 어떤 북핵문제 해법을 구상했는지 주목된다. ◇ 반국가분열법에 대한 중국과 대만의 대립 = 라이스 장관의 중국 방문은 양안사이에 반국가분열법을 놓고 대립이 고조되는 가운데 이루어져 이에 대한 미국의 입장에 관심이 모아졌다. 그러나 라이스 장관과 중국 지도자들의 회담 결과 중국과 미국은 한 자리에 앉으면서도 서로 다른 생각을 하는 동상이몽 상태였음이 드러났다. 중국은 미국으로부터 반국가분열법에 대한 지지까지는 아니더라도 대만의 기를살려주는 반응이 나오지 않기를 기대한 반면 미국은 중국이 북한을 6자회담에 복귀시키기 위해 한층 힘을 기울이도록 설득하는데 주력했다. 라이스 장관은 20일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을 만나 6자회담에서 중국이 맡아온 역할을 높이 평가하고 차기 6자회담이 조기에 개최될 수 있도록 당사국들이 함께 노력할 것을 주문했다. 그러나 후 주석은 대만문제가 여전히 중-미 관계의 안정적 발전에 있어 중요한관건이라면서 미국에 대해 대만해협의 평화를 위협하는 대만 독립 분열세력에 잘못된 신호를 보내지 말라는 말로 답했다. 이에 대해 라이스 장관은 양안 안정과 대만문제의 평화적 해결이 미국의 이익에도 부합한다고 전제하고 미국 정부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지지한다고만 밝혔다. 라이스 장관은 그러나 중국에 북한을 6자회담에 복귀시키는데 지렛대 역할을 요청하는 입장에서도 종려주일 예배에 참가하는 등 중국의 인권과 민주주의, 종교 자유에 대한 압력을 가하는 단호한 모습도 보였다. ◇ 일본 방문, 쇠고기와 안보리 상임이사국 = 일본 방문에서도 북핵 6자회담 재개가 주요 안건이었으나 미국 쇠고기 수입금지해제와 일본의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 등이 중요하게 다뤄졌다. 라이스 장관은 19일 도쿄 시내 조치(上智)대학 연설에서 "핵무기에 대한 (북한의) 야심은 우리의 안전을 위험에 노출시키는 것"이라며 6자회담은 북핵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좋은 틀"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북한이 주권국가라는 사실을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며 "우리는 북한을 공격하거나 침략할 의도가 없다는 것을 거듭 밝혀왔고 6자회담의 다른 참여국과함께 다국간 안전보장을 제공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이날 발언은 라이스 장관이 순방기간에 내놓은 북한에 대한 가장 큰 당근으로평가된다. 특히 부시 행정부 내에서 북한 체제 전복을 주장하는 네오콘 목소리가 큰상황에서 나온 '주권국가' 발언에 어떤 의미가 담긴 것인지 배경이 주목된다. 미국은 라이스 장관이 일본의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에 대한 지지를 공식화하는 선물을 내놓고도 그동안 줄기차게 요구해온 일본의 쇠고기 수입금지 조치를 해제하는 성과를 이끌어내지는 못했다. 그러나 독도 분란과 역사왜곡 등으로 한국, 중국과 갈등을 빚는 상황에서 미국으로부터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 지지를 이끌어냄으로써 큰 선물을 챙긴 셈이다. (서울=연합뉴스) 이주영 기자 scitec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