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 노선의 탈레반 정권이 미국 주도 다국적군의 침공으로 붕괴한 지 약 3년만인 9일 아프가니스탄에서 국민이 대통령을 직접 뽑는 선거가 처음으로 치러졌다. 그러나 하미드 카르자이 현 임시정부 대통령과 경합한 후보 15명 중 여성 후보인 마수드 잘랄을 제외한 14명의 후보가 이번 선거의 무효를 주장하며 재선거를 요구하고 나서 향후 당선자 확정과정에서 진통이 예상된다. 정확한 개표결과가 나오려면 2∼3주가 소요될 전망이지만 초반 개표가 이뤄지는1∼2일 후면 대략적인 결과를 예측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날 오전 7시(현지시간) 1천50만명의 유권자를 대상으로 시작된 투표는 이란과파키스탄의 아프간 난민지역을 포함한 총 2만5천여 투표소에서 대체로 평온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카불 남쪽에서 미군 주도의 다국적군과 탈레반간 교전으로 다국적군 3명이 부상하고, 국경지대에서 350㎏의 폭발물이 발견됐지만 당초 우려됐던 대규모 차량폭탄공격 등은 발생하지 않았다. 아프간 통합선관위는 이날 오후 4시 투표를 종료할 예정이었지만 뒤늦게 투표에참가하는 유권자들을 위해 일부 투표소의 마감 시간을 2시간 가량 연장했다. 선관위는 지난 92년 내전중이던 수도 카불을 떠나 파키스탄으로 피란한 19살의여대생 모카다사 시디키가 첫 투표권을 행사함으로써 투표가 시작됐다고 발표했다. 시디키는 "기분을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정말로 너무 기쁘다"면서 사상 최초의 아프간 대선에서 첫 투표자가 된 소감을 밝혔다. 카불에서 투표에 참가한 굴 섬(60.여)은 "이번 선거는 아프간 국민들이 단결하는 계기를 제공하고, 여성들에겐 전례없는 권리행사 기회를 줬다"며 "지긋지긋한 전쟁을 그만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탈레반의 선거방해 가능성에 대비해 미군과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평화유지군을 포함한 10만여명의 보안군은 철통같은 경계를 폈으며, 수백명의 국제 선거감시단요원들이 선거를 참관했다. 이번 대선에 최종적으로 16명의 후보가 나선 가운데 현지 관측통들은 카르자이대통령의 당선이 가장 유력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카르자이 대통령이 과반 득표에 실패하면 이달 말께 최다득표자 2명을 놓고 결선투표가 실시된다. 카르자이 대통령 외에 우즈베키스탄 출신 군벌 압둘 라시드 도스툼 장군과 유누스 카누니 전 교육장관이 유력한 후보로 지목되고 있다. 의사출신인 마수드 잘랄이여성으로는 유일하게 입후보했지만 득표율은 낮을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이번 선거에 출마한 대통령 후보 16명 가운데 카르자이 대통령과 잘랄 후보를 제외한 14명이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며 개표결과에 불복하기로 합의해 파문이 일고 있다. 대통령 후보들과 이들의 대리인은 이날 아프간 전 국왕의 보좌관을 지낸 우즈벡인사 압둘 사타르 세라트의 집에서 모임을 갖고 이번 선거를 거부하면서 재선을 요구키로 하는 합의문에 서명했다. 이들은 이날 카불 등지의 일부 투표소에서 이중투표 방지를 위해 유권자의 엄지손가락에 찍어주는 잉크가 지워졌다며 부정선거 가능성을 주장하고 있다. 카르자이 대통령의 주요 경쟁자 중 한명인 유누스 카누니의 한 측근은 "카누니후보는 오늘 선거에서 드러나고 있는 부정을 막기 위해 선거를 중단하라는 입장이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선관위측은 "수많은 유권자들이 투표에 참가했고, 투표절차는 안전하고 질서정연했다"면서 "투표를 중단할 정당한 이유가 없다"고 부정선거 의혹을 일축했다. 카르자이 대통령도 "이번 대선은 자유롭고 공정하게 진행됐다"고 반박했다. 리처드 바우처 미 국무부 대변인은 아프간 당국은 대통령 선거 결과가 집계되는데 2주 정도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며 미국은 개표 및 집계 과정을 주시할 것이라고말했다. (카불 AP.AFP=연합뉴스) parksj@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