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전쟁 결의안 표결을 앞두고 미국의 국가안보국(NSA)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이사국 외교관들을 상대로 불법 도청 등 `더러운 술책'(dirty tricks)을 전개할 계획을 세웠으며 영국 정보기관에 협조를 요청했다는 사실을 폭로해 기소된 캐서린 건(29.여)이 25일 무죄 판결을 받고 풀려났다. 영국의 통신감청 정보기관인 정보통신본부(GCHQ) 소속 통역 및 번역 요원이었던캐서린은 지난해 3월 영국 일간지 가디언에 NSA가 영국 정보기관 간부들 앞으로 보낸 `비밀 메모'를 폭로해 큰 파문을 일으켰다. 건이 폭로한 비밀 메모에 따르면 NSA는 안보리에 소속된 비동맹 국가들인 앙골라, 불가리아, 카메룬, 칠레, 파키스탄, 칠레 등 6개국 외교관들을 상대로 영국 정보기관이 은밀한 뒷조사를 실시해 이들의 동태를 제공해 줄 것을 요청했다. 건은 이 같은 미국의 요청이 국제법에 반하며 영국 정보기관을 타락시키려는 것이라고 판단해 NSA가 전달한 `비밀 메모'를 영국 언론에 유출했다. 영국 정부는 건의 이런 행위가 국가기밀 누설에 해당한다고 판단해 건을 즉각 해고하고 재판에 회부했다. 하지만 25일 런던 형사법원에서 열린 공판에서 영국 검찰은 건의 유죄를 입증할증거가 없다며 재판 진행을 포기했으며 법원은 사건 기록을 남기기 위해 건의 국가기밀누설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을 내렸다. 건은 재판이 끝난 뒤 법원 앞에서 가진 기자회견을 통해 "정보기관도 법을 지켜야 한다"면서 "다시 그런 비밀 메모를 본다면 가차없이 언론에 공개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8개월 가까이 계속된 구금과 재판 과정에서 건을 변호한 변호사들과 인권단체 관계자들은 "영국 검찰이 지금까지 건을 괴롭히다가 갑자기 재판을 포기한이유를 납득할 수 없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건은 타이완에서 중국어를 배운 뒤 일본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잉글랜드 서부 글로스터셔주 첼트넘에 있는 통신감청 기관인 GCHQ에 배치돼 통역과 번역 요원으로 일해 왔다. 반전여론이 고조하는 가운데 나온 건의 내부고발은 국제적인 반향을 불러일으켰으며 건이 구속되자 반전운동가로 활동해온 미국 영화배우 숀 펜, 인권운동가 제시잭슨 목사, 영국 신문 길드 등이 국제적인 구명운동을 펼쳐다. 지난 71년 미국의 리처드 닉슨 행정부 시절 베트남전의 부당성에 관한 국방부기밀문서를 폭로했던 `펜다곤 페이퍼' 사건의 주인공 대니얼 얼스버그는 영국을 직접 방문해 적극적인 구명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런던=연합뉴스) 이창섭 특파원 lc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