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침체 가능성 50% 이하면 ‘침체 끝’ 대내외 증시전망, 내년 한국 총선과 미국 대통령선거…. 이 모든 것이 이제는 경기 문제에 달렸다. 그만큼 요즘 들어 나라 안팎에서 저점 통과 논쟁이 가열되면서 새로운 경기판단 방안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부쩍 높아지고 있다. 한 나라의 경제는 그 순환과정에서 국민소득ㆍ물가ㆍ통화량ㆍ이자율 등 여러 지표가 통합적으로 어우러지면서 상당한 규칙성을 보이며 변동한다. 경제활동에 있어서 규칙적인 변동을 경기변동이라 말하고 이런 현상이 반복되는 것이 경기순환이다. 경기변동 국면에 관해서는 여러가지 구분이 있지만 통상적으로 호황ㆍ후퇴ㆍ불황ㆍ회복의 네 가지 국면으로 구분된다. 이때 호황에서 후퇴, 불황에서 회복 국면으로 넘어가는 변곡점을 각각 경기정점과 저점으로 부른다. 일반적으로 경기가 좋다 나쁘다 하는 평가는 일차적으로 생산활동이 얼마나 활발한가 여부에 달려 있다. 이 생산과 더불어 여러 총량변수의 시계열이 같이 움직이면서 한 나라의 경기는 활기와 침체를 반복한다. 다행히 최근까지만 하더라도 △소득ㆍ주가ㆍ이자율과 경기와는 정(正)의 관계 △실업ㆍ재고와 경기와는 부(負)의 관계라는 ‘정형화된 사실’(Stylized Facts)이 있었기에 경기판단이 비교적 용이했다. 문제는 갈수록 이런 사실들이 흐트러지면서 경기판단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으로 실업과 경기와의 관계다. 종전 이론대로라면 경기가 살아나면 일정한 시차를 갖고 실업이 감소했으나 최근에는 경기가 살아난다 하더라도 실업이 줄지 않고 있다. 이른바 ‘고용창출이 없는 경기회복(Jobless Recovery)’이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될까.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크게 보면 두 가지 요인에 기인한다. 무엇보다 급격한 생산성 증가다. 미국의 생산성은 70년대 이후 95년까지 연간 0.7% 증가에 그쳤으나 그후 지금까지 2.5% 증가한 것으로 추정됐다. 또 2001년 이후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정책목표가 물가안정보다 경기부양으로 선회된 것도 커다란 요인이다. 결국 급격한 생산성 증가와 FRB의 경기부양 우선책으로 2001년 말 이후 산업생산과 매출이 비교적 호조를 보였다. 그러나 고용이 뒤따르지 않은 것이 문제다. 정도 차이는 있으나 우리나라를 비롯한 대부분 국가에서도 이 같은 현상을 경험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종전처럼 생산을 중시하면 경기가 회복기에 들어간 것으로 불 수 있으나, 반면 고용을 감안하면 침체가 지속되고 있는 셈이다. 불행히도 종전의 경제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이 같은 현상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 일부에서는 이런 현상을 놓고 ‘경제학이 혼돈시대(Chaos Of Economics)에 접어들었다’고도 말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미국경기를 공식적으로 판단하는 전미경제협회(NBER)의 판단이 갈수록 늦어지고 미 FRB의 그린스펀 의장 등이 경기 문제를 언급할 때 신중을 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또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경기를 보는 시각이 크게 엇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경기와 고용개선이 뚜렷하지 않은 상황에서 국제유가와 같은 공급측 인플레 요인으로 물가마저 오름에 따라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체감경기가 크게 악화되고 있다. 대표적인 체감경기지표인 경제고통지수(Misery Index)는 지난해 5.8이었던 것이 지난 10월에는 7.0으로 높아졌다. 당연히 이런 상황에서는 정책당국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은 커지게 마련이다. 종전처럼 정책당국이 생산과 매출증가를 중시하면 경기를 낙관하게 되고 정책도 소극적으로 대응하게 된다. 반면 국민들의 경제적 고통은 가중돼 경기를 낙관하는 정책당국에 대해 실망하게 되고 적극적인 정책대응을 요구하게 된다. 최근 우리나라도 이와 비슷한 상황이다. 그렇다면 경기판단을 포기해야 할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모든 경제활동은 지금 경기가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느냐 하는 정확한 진단이 선행돼야 가능하다는 점이다. 최근처럼 경기판단이 어려워질수록 주요 기관과 세계 각국들이 보다 정확하고 신속한 경기판단 방안을 고안해내기 위해 열을 열리고 있는 것도 동일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지금까지 여러가지 새로운 경기판단 방안이 발표되고 있으나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이 내놓은 기업취약지수(Corporative Vulnerability IndexㆍCVI, 레버리지 비율과 기업가치 변동성, 무위험 이자율, 배당률 등의 재무제표를 이용해 산출)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CVI는 종전의 경기판단 방법이 경제상황과 정책기조, 경제전망 등 펀더멘털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감안해 만든 지표다. 대표적으로 종전에는 레버리지 비율이 높으면 경기침체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봤으나 최근까지 저금리 기조가 이어지고 차입조건이 개선되는 상황에서는 기업파산과 경기침체 가능성이 낮아지는 것을 설명할 수 있다. IMF가 CVI와 미국경기의 실증적 관계를 연구한 자료를 보면 CVI는 경기침체 가능성을 4~6분기 정도 앞서 예측할 수 있고 이 지수가 높을수록 침체의 골이 깊어지면서 침체기간도 길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에는 어떤가. CVI로 예측한 경기침체 가능성은 99년 말부터 상승하기 시작해 이번 경기의 정점인 2001년 1/4분기에 53%로 최고수준에 달했다. 그후 2001년 말부터 산업생산과 매출증가로 거시경제 취약성이 줄어듦에 따라 최근에는 15% 수준까지 하락했다. 과거의 경험을 감안해 볼 때 CVI로 예측한 경기침체 가능성이 50% 이하로 하락될 경우 경기침체가 끝난 것으로 평가된다. 결과적으로 전미경제학회(NBER)가 이번 경기저점을 1/4분기로 평가했던 점을 감안하면 CVI에 의한 경기판명은 정확했다는 결론이다. 우리나라도 한국은행을 비롯한 국내 전망기관들의 경기예측력이 떨어지고 있는 것이 문제가 되고 있다. 올해만 하더라도 연초에 5%대 후반으로 전망했던 경제성장률이 거의 절반 수준인 3% 내외에 그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런 예측력을 갖고는 정부나 경제각료에 대한 신뢰를 확보하기란 극히 어렵다. 이처럼 국내 전망기관들의 예측력이 떨어지는 데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 종전의 경기예측과 판단방법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새로운 현상들이 많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들이 완전히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최근 우리 경제각료들의 발언처럼 일부 지표가 개선된 점을 들어 경기가 저점을 통과했다고 보는 것은 아무리 잘 봐준다 하더라도 ‘아마추어’ 인상을 지워버릴 수 없다. 우리나라도 종전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경기판단과 예측방안을 고안해 내야 정확한 경기진단과 예측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점이 전제돼야 이를 바탕으로 세운 경제정책과 경제각료에 대한 신뢰확보가 가능하고 정책효과를 기대해 볼 수 있지 않나 하고 생각한다. 한상춘 전문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