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담 후세인 축출 8개월이 지난 지금 미국은 이라크에서 빠져 나갈 길을 모색하고 있지만 `우아한 퇴장'이 기대만큼 쉽지는 않을 전망이다. 모든 일이 계획대로 된다면 1년 안에 미국의 역할은 크게 줄어들게 된다. 연합군의 점령이 끝나고 이라크인들이 새 헌법과 선거를 통해 출범하는 과도 정부를 운영하게 되며 치안은 대부분 이라크인들이 맡게 된다는 것이 계획의 골자이지만 여기엔 수많은 불확실성이 도사리고 있다. 어떤 목표물이라도 공격할 능력이 있고 좀처럼 꼬리를 잡히지도 않는 게릴라들을 훈련도 제대로 못 받은 이라크 치안 병력에게만 맡기고 미군이 병력을 감축할 수가 있을까. 또 미국의 납세자들에게 수십억 달러의 추가 부담을 시키지 않을 만큼 이라크경제가 성장할 만한 안전한 환경이 보장될 것인가. 민주주의 경험이라곤 없는 이라크인들이 조기에 주권을 이양받아 오는 2005년말까지 선거를 실시하고 헌법을 제정할 수 있을 것인가. 이 모든 것이 자신있는 대답을 허용치 않고 있다. 빌 클린턴 정부에서 국방부 이라크 자문위원단장을 역임했던 존 햄리는 이라크사태가 모든 면에서 낙담스러운 것만은 아니지만 치안 문제만큼은 심각하며 "우리가해결의 열쇠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현상황은 미군이 빠른 속도로 바그다드에 진격하고 이라크인 군중이 사담 후세인 동상을 끌어 내리던 때와는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전쟁 초기 미국은 진격 속도도 빨랐고 인명피해는 최소한에 불과했다. 이라크인 들은 미군을 환영했고 식량 부족이나 기타 있음직한 인도적 위기도 일어나지 않았다. 재선을 위한 `사진용 행사'란 민주당의 폄하에도 불구하고 조지 부시 대통령이전투 조종사복 차림으로 항모 에이브러햄 링컨호에 전투기를 몰고 내렸을 때 그는승리를 선언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그러나 조류는 급격히 바뀌어 민주당은 부시가 상황을 크게 오판하고 이라크의평화와 안정을 지나치게 자신하고 있다고 공격했다. 후세인이 축출된 후 약탈자들은 몇날 며칠 동안 무법천지에서 날뛰었고 일반 이라크 국민은 재건과 기초 서비스의 복구가 느린데 불만을 터뜨렸다. 국방부는 최초의 민간인 행정관 제이 가너를 2개월만에 폴 브리머로 갈아 치웠다. 브리머는 이라크 군대를 해체함으로써 반미 게릴라 공격을 막아내기가 더욱 어려워졌다는 비판을 받았다. 전쟁의 정당성 문제가 당장 제기됐다. 부시 대통령의 이라크 침공 명분은 후세인이 지역은 물론, 미국까지도 위협하는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었지만 연합군이 이라크 전역을 장악하고 후세인의 보좌관과 과학자들을 집중 신문한 뒤에도 무기는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고 있다. 이라크 재건을 위한 국제사회의 재정.병력 지원 희망은 급속히 좌절돼 미국 납세자들은 이라크 치안과 재건 비용을 고스란히 떠맡아야 하게 됐다. 의회는 지난 4월 이라크 전쟁비용으로 620억달러를 책정한 데 이어 11월 또 다시 이라크 재건 비용 등으로 870억달러를 추가 승인했다. 미국은 이라크에 13만명의 병력을 유지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과 한국 등지에이미 병력을 주둔시키고 있는 미국으로서는 이처럼 여러 곳에 병력을 분산 배치하는것이 다른 지역의 위기에 대처하는 미군의 사기와 전투태세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크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가 됐다. 최근 연합군에 대한 게릴라 공격은 점점 도를 더 해 가고 있어 11월중 연합군사망자 수는 미군 79명을 포함해 104명으로 월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클린턴 정부에서 일했던 외교관계협의회(CFR) 연구원 리 파인스타인은 "정부가당면한 주요 난관은 바트당이건, 누구이건 저항 세력들이 자신들이 미국보다 오래갈 것이라고 믿는 것"이라고 말했다. 생포된 후세인이 숨어있던 땅굴에서 전화기나 무선기 등 아무런 통신장비가 발견되지 않은 것은 그가 저항세력을 지휘하지 않았음을 의미하며 따라서 후세인 생포가 저항세력의 와해로 이어지지 않을 것임을 의미한다. 미 국방부는 오는 5월까지 이라크 주둔 미군 규모를 10만명으로 줄일 것으로 전망하고 있지만 이같은 계획이 순조롭게 진행될 지 의문이다. 미군 철수 후 치안을담당해야 할 신설 이라크 군에서 빠져 나가는 사람이 속출해 큰 차질이 생기고 있는것이다.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대부분은 이라크에 안정된 정부가 들어서기전에 미군이 철수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전쟁에 대한지지는 점점 약해져 11월 총선 이전에 더많은 병력을 귀국시켜야 한다는 압력이 가중되고 있다. 햄리는 부시대통령이 정치적 압력에 굴복해 미군을 조기 철수시키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대통령은 현단계에서 병력을 철수하는 것은 이라크 치안에 재난을 가져올것이란 점을 본능적으로 이해하고 있다. 미군을 갑자기 철수시킨다면 권력 진공상태가 초래될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바그다드 AP=연합뉴스) youngni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