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루지야 정치 위기 타개책 모색을 위한에두아르드 셰바르드나제 대통령과 야당 지도자들 간 협상이 실패한 데 이어 수도트빌리시에 대한 내무부의 군병력 증강 배치 계획이 발표되는 등 위기가 한층 고조되고 있다. 코바 나르체마쉬빌리 내무장관은 10일 "러시아 체첸 공화국과 접경한 판키시 계곡에 주둔중인 내무군 부대 중 일부를 수도 트빌리시로 이동 배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나르체마쉬빌리 장관은 "계절이 이미 겨울로 접어들어 판키시 계곡에 많은 병력을 계속 주둔시킬 필요가 없어 일부를 빼기로 결정했다"고 배경을 설명했으나 최근계속되는 야당측의 셰바르드나제 대통령 퇴임 요구 시위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그의 이같은 발표는 특히 "현재의 정치적 혼란은 통제 불능 상태이며, 더이상관리할 수 없다"는 다비드 테브자제 국방장관의 지난 9일 발언에 이어 나온 것이어서 주목된다. 셰바르드나제 대통령은 지난 9일 미하일 사카쉬빌리 국민운동당 당수와 민주당수이자 국회의장인 니노 부르자나제(여) 등 야당 지도자들과 대통령궁에서 회담을갖고 혼란 수습 방안을 논의했으나 접점을 찾지 못했다. 사카쉬빌리 당수는 회담 뒤 "대통령이 사임할때 까지 투쟁할 것"이라며 "셰바르드나제는 지금 국가를 내전 상황으로 몰아넣고 있으며, 무슨 일이 벌어지든 그의 책임"이라고 강력 비난했다. 부르자나제 의장도 "대통령은 우리에게 아무런 답변도 주지 않았다"면서 "그가아무런 위기 극복 방안도 내놓지 않았으니 나로선 더이상 할말이 없다"고 강경 대응방침을 시사했다. 시내 국회의사당 점거 농성을 벌이고 있는 시위대 7천여명도 이날 셰바르드나제 대통령 퇴임 요구 시위를 9일째 계속했다. 시위대 인원은 밤낮으로 500-1만명 사이를 유지하고 있다. 시위대는 아직까지 폭력을 사용하지 않고 있지만, 현 상황이 1992년 셰바르드나제가 즈비아드 감사후르디야 전(前) 대통령을 축출하고 정권을 잡을 당시와 너무도 흡사해 관계자들이 잔뜩 긴장하고 있다. 1992년 시위 사태는 그루지야 전체를 내전으로 몰아넣어 감사후르디야 대통령의몰락을 초래했다. 상황이 급박해지자 셰바르드나제 대통령은 흑해 연안 압하스 자치공화국의 아슬란 아바쉬제 대통령을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다. 아바쉬제 대통령은 그동안 트빌리시당국의 지시를 전혀 듣지 않고 봉건 영주 처럼 공화국을 통치해온 셰바르드나제의숙적이다. 그는 하루 전에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하고 역시 도움을 청했으나 차가운 반응을 들은 것으로 알려졌다. 셰바르드나제는 압하스 공화국 수도 바투미 도착 직후 "나는 바투미와 바투미주민들을 그리워해 이곳에 왔다"면서 "(아바쉬제 대통령과) 그루지야의 장래를 논의할 계획이며, 이것은 우호적이고 형제애적 만남이다"라고 말해 도움 요청 계획을 부인하지 않았다. 그는 이어 바투미에서 2만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대중 집회에서 "민중 선동은 즉각 중단돼야 한다"면서 "선동 정치로는 국가를 건설할 수 없으며, 오로지 열심히 일하는 사람 만이 그루지야를 건설할 수 있다. 그루지야는 부흥의 경험을 갖고있으며 그것은 바투미에서 이미 시작됐다"고 자신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는 등 `맞불'을 놓았다. 개인적으로 셰바르드나제를 아주 싫어하는 것으로 알려진 아바쉬제 대통령도 "그들은 그루지야를 모욕하고 있다. 그들이 집권하면 국가에 재앙이 초래될 것"이라며 "우리는 개인적 야욕으로 국가를 내전 위기에 빠트리고 있는 그들을 막아야 한다"고 셰바르드나제를 옹호하는 발언을 해 인구 500만명의 그루지야가 둘로 갈라지는양상을 보이고 있다. 1991년 그루지야 독립 이후 2번째 맞는 이번 위기는 셰바르드나제 대통령에 대한 신임 투표 성격을 갖는 지난 2일 총선이 당국의 조작으로 민의가 왜곡됐다고 주장하며 야당과 시민들이 들고 일어나면서 촉발됐다. 야당과 시민들은 여당측이 참패가 예상되자 투표 실시 1주일이 지난 현재 까지도 개표를 중단한 채 결과도 발표하지 않고 있다고 비난하며 ▲부정 선거 책임자 처벌 ▲재선거 실시 ▲셰바르드나제 대통령 사임 등을 요구하고 있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옛 소련 대통령 당시 외무장관으로 동서 냉전체제 종식에 앞장섰던 셰바르드나제 대통령이 `회색 여우'란 별명에 걸맞게 이번 위기를 무사히 넘기고 2005년 까지인 대통령 임기를 마칠지 아니면 전임자 처럼 실각의 길을 걷게 될지 관심이 모아진다. (모스크바=연합뉴스) 이봉준 특파원 joon@yonhap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