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프랑스의 간판 가전업체인 TCL과 톰슨이 세계 최대 TV업체를 만들기로 했다. 내년 중 최종계약이 체결되면 연간 1천8백만대를 판매하는 초대형 TV업체가 탄생한다. 지난해 1천3백만대를 팔아 세계 1위를 차지한 삼성전자를 제치는 셈이다. TCL과 톰슨의 합작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 기자의 머리 속에는 미국 투자은행인 리먼브라더스 아시아 기업금융부의 최고책임자가 지난달 선전 첨단기술교류회 세미나에서 한 말이 떠올랐다. "하이얼이 삼성전자의 지명도와 규모를 따라 잡으려면 5~10년은 걸릴 것입니다." 하이얼은 중국 최대 종합가전업체로 중국기업이 세계 일류기업을 따라 잡는데는 적지 않은 세월이 소요될 것이라는 의미로 이해됐다. 하지만 그가 간과한 게 있다. 중국 기업이 동반자를 찾기 위해 세계로 나가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자금만 빨아들이던 중국이 세계화를 위한 헌팅에도 나서고 있는 것이다.해외의 쟁쟁한 기업들과 제휴하거나 어려움에 빠진 유명기업들을 인수합병하는 식이다.하이얼은 일본 산요전기와 제휴해 일본시장을 공략하고 있다.BOE테크놀로지는 지난해 한국의 하이디스를 인수하면서 세계 TFT-LCD(초박막액정표시장치) 시장의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중국 최대 자동차업체인 디이자동차가 올해 글로벌 5백대 기업에 진입한 데에는 독일 폭스바겐과의 합작 성공이 발판이 됐다. 중국 기업이 외국기업의 브랜드 기술 유통망을 새 엔진으로 장착하기 시작한 것이다. 중국은 막강한 자금력을 보유하고 있다. 외환보유고가 9월말 현재 3천8백39억달러로 일본에 이어 세계 2위다. 중국 정부도 '조우추취(走出去)'하라고 재촉한다. 해외투자 규제완화가 줄을 잇는다. 최근 베이징 등 14개 도시의 외환 당국은 중앙 정부를 거치지 않고 자체 승인해줄 수 있는 해외투자 한도액을 건당 1백만달러에서 3백만달러로 높였다. 한국 기업들이 빛의 속도로 질주하는 중국기업들의 세계화를 지켜보면서 따라 잡히느냐, 아니면 그들과 손잡고 세계 일류기업으로 나가는냐 하는 선택의 기로에 놓여있다면 지나친 얘기일까. 베이징=오광진 특파원 kj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