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요타가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한데는 창업자 가문과 전문경영인간 협력과 경쟁, 그리고 '도요타 유전인자', 다시 말해서 도요타 정신을 전 임직원이 공유해온 것이 밑바탕이 됐다. 특히 오너 가문과 전문경영인들이 능력에 따라 서슴없이 경영권을 넘겨주고 이어받는 전통이 오늘의 도요타를 있게 한 밑거름이 됐다는 평가다. 도요타자동차 창업 1세인 도요타 기이치로의 생산성 혁신에 대한 의지는 부사장 오노 다이이치에 의해 린(lean)방식으로 승화됐다. 오노 다이이치는 저스트인타임(JIT)을 현장에 적용시켜 혁신을 주도한 경영자다. 전례없는 불황으로 감원이 불가피했던 1950년, 도요타 기이치로 회장은 전문경영인인 이시다 다이조 사장에게 경영권을 넘겨주고 미련없이 일선에서 물러났다. 아무리 회사를 세운 창업자라 할지라도 회사의 경영이 부실해지면 책임을 져야 한다는 뜻이었다. 또 바톤을 넘겨받은 이시다 다이조 사장은 회사를 흑자로 만들어 도요타 가문에 경영권을 되돌려주겠다는 약속으로 창업자 기이치로 회장의 결단에 화답했다. 실제로 그는 1967년 도요타 기이치로 회장의 동생인 도요타 에이지에게 사장 자리를 넘겨줌으로써 그 약속을 지켰다. (기이치로 회장이 사망한 뒤라 사촌동생에게 넘겨주었음) 도요타 에이지는 오너가문이지만 전문경영인 못지않은 경영 능력을 보여주었다. 그는 모터라이제이션을 예견해 생산시설을 대폭 확충했다. 또 기술 개발을 통해 세계 최초로 하이브리드 카를 선보이는 등 오늘날 도요타 도약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현재의 도요타 최고 경영층은 도요타 쇼이치로 명예회장과 오쿠다 히로시 회장, 조 후지오 사장으로 구성돼 있다. 이름에서 알 수있듯 도요타 쇼이치로 회장은 오너가문으로 창업 2세다. 제안활동의 책임자로 공정 혁신을 주도했던 도요타 쇼이치로 명예회장은 전문 경영인인 오쿠다 히로시를 후임 회장으로 선임, 경영 혁신을 위해서는 오너와 전문 경영인간의 구별이 없음을 입증했다. 오쿠다 회장은 취임후 '타도 도요타'의 놀라운 발상으로 회사뿐 아니라 일본의 시스템 개혁을 주도하고 있다. '도요타'를 타도해야 더 강한 '도요타'가 된다는 혁신 의식이 도요타 경영자들의 철학에 반영돼 있다. 오쿠다 회장은 도요타를 연구하는 전문가들로부터 도요타 불패신화의 기틀을 닦은 역대 2명의 명감독 중 한 명으로 꼽힌다. 1950년 도산 직전의 위기에 몰렸던 도요타를 기사회생시킨 고(故) 이시다 타이조 사장이 초대 명감독이었다면 오쿠다 회장은 그 뒤를 잇는 스타이다. 오쿠다 회장의 도요타 사장 재임 시기(95.8~99.6)는 시작부터 끝까지 파란과 변혁의 연속이었다. 경리 출신에다 필리핀 근무를 오래한 탓에 사내 기반이 약했던 그의 등장은 생산, 기술 파트를 거쳐야 사장에 오른다는 도요타의 불문율을 깬 혁명이었다. 자기 주장이 뚜렷하고 상사 앞에서도 말을 돌리는 법이 없는 그는 취임 초부터 "변하지 않는 것이 가장 나쁜 일"이라며 대기업병에 걸린 당시의 도요타에 가차 없이 메스를 들이댔다. 시장 점유율 40%대 회복, 유럽시장에서의 전면 승부, 미국 현지생산 대폭 확대, 카레이스 F1 참전 결정 등이 모두 그의 머리와 가슴에서 나온 결정이었다. 오쿠다 회장은 좌천이나 다름없다는 평을 받았던 필리핀 근무 중 거물급인 리카르도 시베리오를 상대로 거액의 미수채권을 해결, 주목을 받았다. 쇼이치로 명예회장은 도요타맨 답지 않게 거칠고 바른 소리를 서슴지 않는 점을 높이 평가해 그를 전격 발탁했다는 후문이다. 오쿠다 회장과 조 후지오 사장이 도요타의 양 축이라면 쇼이치로 명예회장은 26만4천여 도요타 맨들의 구심점이다. 나고야 공대를 졸업한 그는 창업자인 부친 기이치로의 영향을 받아 젊은 시절 엔진 연구에 몰두한 이력을 갖고 있다. 가이젠(개선)에는 끝이 없다며 위기의식이야말로 도요타의 최고 자산이라고 강조하는 그는 "구미 메이커들에 졌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말할 정도로 강한 승부욕과 다부진 각오로 뭉쳐져 있다. 최고경영자가 손에 기름 때를 묻히는 것은 당연하다고 강조하면서 모든 문제의 열쇠는 현장에 숨어 있다는 신념을 잊지 않고 있다. 도요타 맨들과 언론으로부터 세계화의 초석을 놓은 인물이라는 찬사를 듣고 있다. 말을 아끼는 스타일이지만 그룹 사장단 회의와는 별도로 오쿠다 회장, 조 후지오 사장과 자주 대화와 정보를 나누며 도요타의 진로에 핵심 역할을 맡고 있다. 도요타 관계자들은 도요타 생산방식을 탄생시키고 오늘의 도요타를 키운 최초의 씨앗이 도산 직전까지 몰렸던 과거의 위기 경험에 있다고 말하고 있다. 위기의식을 바탕에 깐 끊임없는 가이젠 학습이 원동력이자 성공 유전자로 불패 신화를 만들어냈다고 진단하고 있다. 그러나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성공 요인은 최고 경영자들이 보여준 진지한 자세와 위기의식이었다는게 이들의 지적이다. 이케부치 고스케 부회장은 "사장이 온 힘을 다해 일에 매달리면 현장 종업원들도 따라오게 돼 있다"며 "어느 시대나 개혁의 원동력은 경영자가 가진 위기감"이라고 강조했다. ----------------------------------------------------------------- 특별취재팀 =양승득(도쿄특파원) 우종근(국제부 차장) 이익원 이심기 정태웅 김홍열(산업부 대기업팀 기자) 김영우(영상정보부 차장) 허문찬(" 기자) 도쿄=양승득 특파원 yangs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