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보수 야당 소속 하원 의원이 공개 석상에서 "유대인은 범죄자 민족"이라고 말해 독일 사회에 큰 파문이 일고 있다. 제1 야당인 기독교민주연합의 마르틴 호만 의원은 지난 10월 3일 독일 통일 기념일에 자신의 지역구에서 열린 기민련 당원 상대의 연설에서, "러시아의 공산주의혁명 와중에 수백만 명이 죽은 것에 유대인의 책임이 크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그는 "볼셰비키 등 유대인들이 당시 혁명의 주요 지도자로 활동했고, 악명높은비밀경찰 가운데 유대인 비중이 매우 컸다"면서 "이런 점에서 끔찍하게 들리겠지만유대인을 범죄자 민족으로 규정하는 것은 상당한 타당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는 유대인들이 독일인을 범죄자 민족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논리"라고 설명한 뒤 "그렇지만 유대인과 독일인 어느 쪽도 범죄자 민족으로 규정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나의 입장"이라고 강조했다. 이 같은 발언이 지난 달 30일 뒤늦게 헤센주 라디오 방송에 보도되자 주요 언론들이 모두 이를 문제삼았으며, 각 정당이 일제히 그를 비판하면서 의원직 사퇴를 요구했다. 또 유대인 단체들은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밝히는 등 강력하게 반발했다. 소속 정당인 기민련의 안겔라 메르헬 당수는 방송 보도 당일 호만 의원에게 전화를 걸어 `전혀 받아들일 수 없는 말"이라며 질책한 데 이어 독일 유대인중앙협의회 의장에게 사과하면서 당의 입장과는 배치되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호만 의원은 그러나 자신은 "진실을 이야기 했을 뿐"이라며 버티다가 결국 1일"유대인은 범죄자 민족이란 말은 자신의 의도와 달리 연설 중에 실수로 한 것이지만이 말로 (유대인들의) 감정이 상했다면 명백히 사과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또 자신은 독일인과 유대인 모두 범죄민족이 아님을 강조하려 했으며 나치의 유대인학살(홀로코스트)의 독특성을 부인하려는 의도는 없었으나 언론이 일부분만 부각시켜 잘못 보도했다고 주장했다. 이런 해명에도 불구하고 사민당과 녹색당 의원들은 그의 의원직 사퇴와 기민련측의 강력한 조치를 촉구하고 있으며, 언론도 비판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반유대주의 전문가인 볼프강 벤츠는 "이는 근년 들어 독일 공직자가 공개 표명한 반유대주의 발언 가운데 가장 강력한 것"이라면서 "10쪽에 달하는 연설 원고를검토한 결과 부지불식 간에 한 발언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시사 주간지 슈피겔도 호만 의원의 발언은 결코 실수가 아니라면서 그가 지난 2001년 5월 하원 연설에서도 나치 강제노역에 대한 독일의 배상 면책을 주장, 사민당과 녹색당 의원들의 야유를 받은 바 있다고 밝혔다. 슈피겔은 또 적지 않은 기민당 정치인들과 우파 지식인들이 우파정당이나 사회단체에서의 강연과 기고를 통해 반유대주의 발언을 하고 독일 민족주의를 자극하는일을 해오고 있다면서 기민당이 완전한 우익의 길로 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베를린=연합뉴스) 최병국 특파원 choib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