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시대 때 일본 기업이 탄광지역 한국인 노무자 대상으로 위안소를 실제로 운영했고, 특히 일본 당국이 이에 적극 관여했다는 점을 일본인이 당시 일본 공문서를 발굴해 입증한 최초의 논문이 공개됐다.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정혜경 박사는 일본 삿포로(札幌)시 교육위원회 직원 니시다 히데코(西田秀子)씨가 쓴 `전시하 홋카이도(北海道)에서 조선인 노무위안부의 성립과 실태'라는 논문이 일본「여성사연구 홋카이도」 창간호에 게재됐다고 17일 밝혔다. 정 박사가 입수한 이 논문에 따르면 홋카이도내 탄광지역 노무위안소는 `조선인요리점'이라는 명칭으로 운영됐고, 일본 패전 뒤에도 계속 존재하다가 조선인 노동조합의 항의에 따라 폐지된 것으로 밝혀졌다. 노무위안부는 1939년 이후 일본내 광산지역 위안소에 보내진 여성으로 당시 일본광산협회 광산실태조사를 분석한 결과, 미쓰비시(三菱)가 운영하는 미바이 탄광을비롯해 홋카이도내 최소 18개곳에 위안소가 설치됐다고 논문은 밝혔다. 또 1940년 일본 국세조사자료에도 홋카이도에 100명 정도의 조선인 여성이 있었고, 20세 이하가 60% 정도이며 14∼15세 소녀도 포함돼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논문은 노무위안소가 `위안소'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않고 `조선요리점'이라는명칭을 사용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홋카이도 당국이 1938년 취체요강(단속지침)을 마련, 조선요리점 등 도내음식점을 업태별 조합으로 묶은 뒤 종업원에게 성병예방 차원에서 위생검사와 건강관리를 하도록 하고 법적.재정적 지원도 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고 논문은 전했다. 또 일본 국가연구기관인 노동과학연구소는 `반도노무자 근로상황에 대한 조사보고'에서 홋카이도 탄광기선 주식회사 등 광산업체에 대해 `위안소의 건물을 기업에무상대여하고 이용료는 기업이 결정한다'는 내용을 담은 자료가 발견돼 기업의 관여를 시사한다고 논문은 밝혔다. 광산업체인 홋카이도 탄광기선 주식회사의 내부문건 `반도인 위안소에 대한 위로금 지급의 건'에도 `위안소의 조선인 경영자에게 위로금을 지불한 경위' 등과 `산업전사인 반도인 부대(조선인 탄광노동자)의 가동률을 높이기 위해 위안소를 설치했다'는 목적도 기록돼 있다. 논문은 이어 요리점 주인이 조선에 가서 `선(先)대금'을 주고 조선여성을 데려와 이를 근거로 위안부로 만든 것으로 파악된다며 일본 패전 뒤에도 위안소는 존속됐고, 이후 조선인 노동조합의 항의에 의해 폐지됐다고 설명했다. 정혜경 박사는 "노무위안소가 일본 당국의 정책적 방향에 따라 법적.재정적 지원을 받으며 운영된 것으로 나타났다"며 "일본기업과 일본당국이 노무위안소 운영에적극적으로 관여했다는 점을 당시 자료에 의해 증명한 최초의 논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위안소를 운영한 탄광업체명이 명시가 돼있기 때문에 전후보상 소송에활용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라며 "홋카이도 지역에 국한하지 않고 향후 일본내 다른 지역에 대한 실태조사도 이어져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 박사는 이어 "일본 지역신문인 홋카이도 신문이 9월2일 이 논문을 보도했다"면서 "그러나 이 신문은 `조선여성이 일본인으로부터 민족차별을 받고 다시 조선 남성에게도 성적차별을 받았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이 같은 논거는 일본이 전쟁수행을 위한 총력전 체제였고, 조선인이 스스로 선택하거나 피할 수 있는 여지가 적었음을 감안하면 조선인도 전쟁 가해자였다는식으로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서울=연합뉴스) 정윤섭 기자 jamin74@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