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의 탄저균 테러를 비롯, 2차대전 이후 집중적인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생화학무기도 따져 보면 그 역사가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깊다는 학자들의 연구가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뉴욕타임스 인터넷판이 6일 보도했다. 미국의 재야 고전 및 민속학자 에이드리엔 메이어는 최근 출판된 저서 "그리스의 불, 독화살, 전갈폭탄: 고대의 생화학전"에서 신과 맞먹는 힘을 가진 장사 헤라클레스조차 머리 아홉개 달린 뱀 히드라를 죽인 뒤 그 독을 바른 화살을 항상 지니고 다녔다면서 독(毒)을 의미하는 'toxin'의 어원은 화살을 뜻하는 그리스어 'toxon'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비록 호메로스가 자세히 묘사하지는 않았지만 상처에서 검은 피가 나오고 거머리를 이용해 썩은 피를 빨도록 하는 장면이 나오는 것으로 미루어 트로이 전쟁에서 뱀독을 묻힌 화살이 결정적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메이어는 그리스 신화 뿐만 아니라 유럽과 중동, 인도, 중국의 역사적 전쟁에서 수많은 생물무기가 등장했다면서 이를 사용해 승리했거나 희생자가 된 인물들로 한니발과 시저, 알렉산더 대왕 등을 들었다. 그는 근래까지만 해도 전쟁보다는 달력 제작에 심혈을 기울였던 것으로 알려진 마야족 사제들이나 장 자크 루소의 `고상한 야만인'의 표상으로 여겨졌던 타히티 주민들 역시 손에 피가 마를 날이 없었던 것으로 밝혀졌다면서 "전설이나 역사에 등장하는 수많은 사례들은 생화학전의 기원과 도덕적, 기술적 제약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그는 기원 전 1770년 수메르의 설형문자를 보면 당시 사람들이 치명적 독물에 관한 지식이 있었음을 알 수 있었지만 보다 믿을만한 기록이 남아 있는 그리스.로마이후로 연구를 집중했다고 밝혔다. 책에는 또 우물에 독을 풀거나 전염병에 걸려 죽어가는 환자를 적진에 떨어뜨리는 행위 등이 묘사돼 있는데 로마 역사가들은 적군 병사들과 적의 도시에 천연두와 가래톳을 퍼뜨린 아군의 행위를 `역병 퍼뜨리기'로 비난하기도 했다. 펠로폰네수스 전쟁 당시 스파르타인들은 적의 요새를 함락하기 위해 독가스와 화염방사기를 사용했으며 아시리아인들은 석유를 사용한 불폭탄을 발사했고 고대 중국과 인도 역시 독연기를 피우는 수법을 사용한 기록이 남아 있다. 트로이의 용사 아이네이아스가 남긴 기원전 4세기 전법에는 화학물질를 사용한 불의 포위전에서 살아 남는 법이 자세히 묘사돼 있다. 1940년대에 개발돼 베트남전에서 본격적으로 사용된 네이팜탄의 기원이라 할 수 있는 화염방사기는 7세기 콘스탄티노플을 에워싼 이슬람군의 포위망을 뚫는 데도 사용된 것으로 기록돼 있다. 그러나 당시에도 이같은 대량 살상무기를 둘러싼 찬반 양론이 있었으며 자칫하면 아군에게 화를 자초하는 `양날의 칼'이라는 비판도 있었다. 또한 훤히 트인 공간에서 걸맞은 상대와 일대일로 겨루다 죽는 것을 `정정당당한 싸움'이라고 여기던 고대 그리스인들과 당대의 적에게는 이같은 방식이 비열하고 비윤리적으로 여겨졌던 것으로 추측된다. 메이어의 이같은 연구에 대해 하버드대 고고민족박물관의 스티븐 르블랑 박사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 이후의 비교적 짧은 시간에 국한된 것이라는 점을 지적하면서 생화학전의 역사는 이보다 훨씬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말했다. '끝없는 전투'의 저자인 르블랑 박사는 "사회가 점점 복잡해지면서 보다 조직적이고 강력한 전쟁이 벌어지긴 했지만 여러 자료들을 살펴보면 1만4천년 전에도 인구의 최소한 25%는 전쟁으로 죽었다"면서 고대인들이 평화를 사랑했을 것이라는 믿음은 허구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문명 이전의 전쟁' 저자인 일리노이 대학의 로런스 킬리 박사도 원시인들의 전쟁이 오늘날에 못지 않게 무자비했음을 지적하면서 "서구인들이 자신들을 창조의 핵심이자 세계의 지배자로 보던 시각에서 뒤늦게 벗어나긴 했지만" 두 차례의 세계 대전 이후 스스로를 인간 이하의 존재로 비하하는 것 역시 불합리한 일이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youngni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