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상공에서 발생한 여객기 폭파사건과 관련해 유엔이 리비아에 취해온 제재가 11년여만에 해제됐다. 그러나 미국이 리비아의 대량파괴무기 추구 등을 이유로 리비아 정부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유지할 뜻임을 분명히 밝혀 제재 해제 후에도 리비아의 대외 교역 확대와 대미관계를 비롯한 외교관계의 정상화에는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안보리는 12일 대(對)리비아 제재 해제안을 표결에 올려 13대 0으로 통과시켰다. 15개 안보리 이사국들 가운데 미국과 프랑스는 표결에 불참했다. 안보리는 리비아가 지난 88년 발생한 팬암기 폭파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된 리비아인 두 명의 인도를 거부하자 92년 무기금수 및 항공기 운항 금지를 골자로 하는제재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99년 리비아가 문제의 용의자들을 네덜란드에 설치된 스코틀랜드 법정에인도한 뒤 안보리는 제재를 해제하지 않은 채 시행을 유보했고 미국과 영국은 리비아 정부가 이 사건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피해자들에게 배상할 경우에만 제재를완전 해제하겠다고 밝혀왔다. 리비아는 결국 270명의 피해자 1인당 500만-1천만달러를 배상하기로 유족들과합의해 제재 해제의 길을 텄다. 제재 해제안은 당초 지난 9일 표결에 올려질 예정이었으나 프랑스가 89년 발생한 또다른 폭파사건의 자국인 피해자들이 받은 보상이 팬암기 폭파사건 보상과 비교할 때 너무 빈약하다면서 보상액을 늘려주지 않을 경우 거부권을 행사하겠다고 위협해 표결이 연기된 바 있다. 리비아는 프랑스측 유족과도 배상금 추가 지급에 합의했다. 미국은 표결에서 반대표를 행사하지 않음으로써 여객기 폭파사건의 자국 피해자들이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길은 열어 놓았으나 자체적인 대 리비아 제재까지 해제할방침은 아님을 분명히 했다. 제임스 커닝햄 유엔 주재 미국 차석대사는 "미국의 결정이 리비아 정부를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조치로 해석돼서는 안된다"면서 "미국은 빈약한 인권보장 실태, 테러 연루, 무엇보다 대량살상무기 추구 등 리비아의 다른 측면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뉴욕=연합뉴스) 추왕훈특파원 cwhyn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