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은 세계보건기구(WHO)와 국제자살방지협회(IASP)가 제정한 제1회 세계자살방지의 날이었다. 이날은 공교롭게도 한국 농민단체 대표가 WTO(세계무역기구) 제5차 각료회의 개최지에서 시위 도중 스스로 목숨을 끊은 날(미국 시간 기준)이기도 하다. WHO와 IASP, 그리고 일부 국가의 발표 자료를 토대로 지구촌의 자살 실태를 살펴본다. ▲ 인류 13번째의 사인=WHO와 IASP에 따르면 자살은 교통사고와 각종 재난, 질병에 이어 13번째로 많은 희생자를 낸 사인에 속한다. 하지만 연령층으로 따지면 15-44세 사이에서는 4번째에 해당한다. IASP의 디에고 데 레오 회장은 "지난 2000년 전세계에서 81만5천명이 자살한 것으로 추정된다"면서 이는 40초당 1명이 자살한 셈이라고 말했다. 데 레오 회장은 더욱 큰 문제는 이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자살을 기도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자살을 기도했던 사람들의 삶은 정신적, 사회적, 경제적으로 심한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는 자살방지의 날을 제안한 것은 우리 모두가 위험에 처한 사람들을 도울 책무가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 선진사회에도 만연=고도의 민주주의와 경제, 천혜의 기후 조건도 인간의 자살 충동을 억제하지 못하는 것인가?. 세계보건기구(WHO)보고서에 의하면 서유럽 국가들 가운데 스위스가 자살률이 가장 높았으며 상대적으로 부유하지 못한 국가들인 이탈리아와 그리스의 자살률은 가장 낮은 편에 속했다. WHO보고서에 의하면 스위스에서는 지난 20년간 자살이 교통사고를 압도하는 최고의 사인으로 자리잡고 있다. 지난 99년 스위스에서 발생한 자살건수는 1천300건이에 이른 반면 교통사고사는 516건에 그쳤다. 한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보고서에 의하면 지난 90년대말을 기준으로 회원국의 청장년층의 자살률을 조사한 결과, 뉴질랜드가 인구 10만명당 13.6명 꼴로 가장높았고 그 다음은 아일랜드(10.3명)와 핀란드(9.9명)순이었다. 물론 WHO보고서는 8,90년대에 여타 서유럽 국가들의 자살률은 근 30% 가량 감소했고 스위스도 25%가량 감소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는 각종 사회적 예방장치 때문에 자살하기가 점점 어려워진 결과라는 것이 WHO보고서의 우울한 결론이다. 같은 선진국이라도 미국은 자살률이 매우 낮은 것으로 나타나 주목된다. 지난 2001년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가 99년 사망자 239만명을 대상으로 사인을 조사한 결과, 약 30%가 심장병으로, 그리고 23%가 암으로 숨진 것으로 나타났다. 각종 사고로 숨진 사람은 전체 사망자의 4%였고 자살률은 1%에 불과했다. ▲일본은 자살왕국= 지난 2001년 미국 ABC방송의 보도에 의하면 하루 평균 100명의 일본인들이 정신적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해 자살을 선택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2000년 한 해동안 3만2천957건의 자살 사건이 발생했는데 이는 하루기준으로 100명에 가까운 충격적 결과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특히 스스로 목숨을 포기한 사람의 약 70%가 남성이고 자살 이유는 대부분 우울증이었다. 연간 자살건수를 미국과 비교하면 비슷하지만 양국의 인구차를 감안하면지나치게 높은 수준이다. 자살률이 이처럼 높은 이유는 체면을 중시하는 일본의 문화적 전통과 의료 시스템의 문제점이 원인이라는 것이 정신과 전문의들의 진단이다. ▲중국.홍콩 자살률 증가에 고민= 중국심리위기 연구 및 예방센터가 지난 10일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지난 90년대 중반부터 매년 25만명이 자살하고 있다. 특히 15-34세 연령층에서는 압도적인 사인이 되고 있다. 또 200만명이 매년 자살하려 했다고 실패한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보건기구에 의하면 자살의 90%는 정신적 문제 때문이지만 중국의 경우는 37%가 일상생활의 압박이나 절망에서 비롯된 것으로 조사됐다. 중국의 자살자 가운데절반은 단 2시간의 결심으로 이를 감행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 7월 홍콩 마사회 자살방지 연구센터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홍콩의 부동산값과 주가 하락을 서민들의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자살자가 급증하고 있다. 지난 2002년 홍콩에서 자살한 사람은 모두 1천120명. 인구 10만명당 16.4명.자살 원인으로는 24.7%가 빚에 시달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밝혀졌다. ▲ 개도국도 예외없어= WHO보고서에 의하면 서유럽의 자살이 지난 8,90년대 크게 줄어든 반면 같은 기간 중 구소련권 국가들의 자살률은 증가추세를 보였다. 자살의 주요인은 경제변동에 따른 박탈감과 실업 때문인 추정되고 있다. 그러나 이들 요인 사회적 박탈과 알코올 중독, 가정폭력, 음주운전과 같은 고전적 자살 유발요인도 존재할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의 지적. WHO와 IASP가 밝힌 인도의 자살 실태도 놀랍다. 매년 10만명이 목숨을 끊고 있는데 이중 20-40세 연령층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14세 이하의 어린이도 4-5천명이나됐다. 자살미수 건수는 자살건수보다 보통 6-20배 가량 많다. 밝혀진 자살 원인은 인간 가정불화, 빚이 주요인이었다. 밝혀지지 않은 자살원인의 50-60% 정도는 정신질환 때문인 것으로 추정되고있다. 또 통념과는 달리 23개대도시의 자살률은 9%에 불과했고 89%는 농촌이나 소도시에서 발생했다. BBC방송에 따르면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는 시간당 1명꼴로 자살이 발생하고 있고 자살미수는 20여건에 달한다. 이 나라에서 자살은 3번째의 사인에 속한다. 자살수단은 총기가 으뜸을 차지하고 있고 그 다음이 극약 복용이다. 자살을 선택하는 이유는 인간관계의 문제와 가정불화, 빚, 스트레스, 학업문제, 우울증 등이꼽히고 있다. 폭력과 범죄, 사회경제상황과 인권유린이 스트레스의 요인이다. 남아공의 자살자는 15-19세 연령층에서 집중 발생하고 있다. 성폭행을 당한 어린이, 에이즈에 걸린 사람들이 자살을 택하는 비율이 매우 높은 것도 특징이다. (제네바=연합뉴스) 문정식 특파원 jsmo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