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러내놓고 말은 안해도 요즘 일본에 귀화한 사람들이 꽤 늘었어요." 휴전 직후 20세의 나이로 일본에 건너와 50년째 타국살이를 하는 재일교포 실업인 강모 회장. 2년만에 기자와 다시 만난 그는 요즘의 한국은 왜 그리 불안하고 위태해 보이는지 모르겠다고 한숨부터 내쉬었다. "위성방송으로 한국 뉴스를 볼 수 있지만 귀를 닫고 사는게 맘 편합니다. 온통 파업, 비리 소식에다 비난과 헐뜯는 내용뿐이니 말입니다." 그는 교포들의 표정이 지금처럼 어두워 보이기는 처음인 것 같다고 털어놨다. 뿌리를 고집하며 귀화를 외면했던 이웃 중에서도 소리 없이 국적을 바꾼 경우가 적지 않다며 귀화 배경에 한국의 복잡한 사정도 한몫 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의 말을 액면 그대로 인정하긴 힘들다 해도 일본에 비친 한국발 뉴스는 잿빛 일색이다. 산업현장은 노사분규로 어지럽고, 정치권은 각종 의혹과 초대형 비리사건이 넘쳐난다. 북한 핵 위협으로 국제 정세가 요동쳐도 휴전선 코 밑의 한국은 이념 대립과 갈등이 더 먼저다. 경제는 내리막길을 달리고 체감경기가 바닥이라는 뉴스 한 켠에서는 향락 산업과 과소비 소식이 건재하다. 일본인들의 차별과 멸시 속에서 살아 온 교포들에게 조국의 밝은 소식은 큰 위안이다. 그렇다고 이들이 자신들의 코드에 맞춰 나라를 이끌어 달라고 주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고향 집과 두고 온 친척들의 얼굴이 눈에 아른거릴 이들이 '귀를 닫고 사는게 맘 편하다'고 말할 정도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홧김에 귀화했다는 교포들이 나오지 않도록 한국호의 핸들을 바로 잡고 가속페달을 밟는 것은 정치 지도자들의 더 미룰 수 없는 책임이자 의무다. 14일 아침에도 일본 언론은 북한 핵 문제와 함께 노무현 대통령의 4개 신문사 제소,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 구속 소식 등을 빅 뉴스로 대접하고 있었다. 도쿄=양승득 특파원 yangs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