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전쟁후 미국의 중동정책이 좌충우돌식난맥상을 보이고 있다. 조지 W 부시 미 정부는 이라크 전후 복구와 신정부 구성 일정이 늦춰지고 있는데도 당분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협상에 주력한다는 방침이다. 한편으로는 시리아에 이어 이란 길들이기에 신경을 쏟고 있고, 이라크전에 협력한 걸프 국가들에게는 자유무역협정을 `당근'으로 내거는 차별정책을 구사하고 있다. ◆ 이라크 게릴라전 시작되나=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전 주요 전투 종료를 선언한지 두달이 지났지만 총성이 멈추지 않고 있다. 그토록 확신하던 이라크 대량살상무기 증거도 아직 찾아내지 못했으며 이라크 국민의 기초생활 고통은 해소될 기미를보이지 않고있다. 미 정부 관리들의 강력한 부인에도 불구하고 이라크가 제2의 베트남화하고 있다는 주장이 점차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다. 존 F 케네디 미 대통령이 암살됐던 1963년 당시 베트남전 미군 전사자 수는 50명선을 겨우 넘었다. 그러나 이라크전 종료 후 두달이 지난 지금 미군 희생자 수는이미 50명을 넘어섰다. 그것도 초반에는 차량 사고가 인명 손실의 주원인이었으나지금은 이라크 잔병의 매복공격에 의한 인명피해가 늘고 있다. 심지어 미군 아파치헬기가 총격을 받아 격추되기도 했다. 부시 행정부의 공격 구실이었던 이라크 대량살상무기 의혹은 1964년 린든 존슨미국 대통령 당시의 통킹만(灣) 사건 처럼 날조됐다는 의심을 지우기 어려워졌다. 미 의회는 당시 베트남 북부 통킹만 연안에서 미 정찰함이 피격된 것으로 알려진지사흘 만에 존슨 대통령에게 침략 방지를 위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할수 있도록 허용하는 결의를 채택했다. 전문가들은 40년 전의 베트남전과 이라크 현재 상황의 차이점은 미군의 희생이주로 바그다드 북서쪽 이른바 `수니파 삼각지대'에 집중됐다는 점이라고 말한다. 미 군은 사담 후세인 전정권의 권력기반인 바트당과 수니파 이슬람 신도들이 밀집한 이지역에서 최근들어 매주 평균 5명씩 희생되고 있다. 문제는 수니파 삼각지대에서 앞으로도 전투가 가열되고 이라크의 다수 종파인시아파 이슬람신도들이 미군의 저항에 강력히 도전할 것이라는 점이다. 미국은 이미이라크 사회의 양대 세력인 시아파와 수니파를 분열시켜 국민통합을 붕괴시켰다는비난을 면키 어렵게 됐다. 전세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는 과도정부 출범 일정도 아직 불투명하다. 바트당전력자들을 새 정부에 참여시키지 않는다는게 미 군정의 기본 방침이지만 현실성이부족하다. 또 망명 인사들을 새 정권의 주축으로 내세울 경우 상황을 주시하며 행동을 자제해온 시아파의 불만이 폭발할 소지가 크다. 식수와 전력 , 통신 등 이라크 국민의 기초 생활기반이 아직 복구되지 않은 점도 미국에 그 책임을 돌릴 수 밖에 없다. 앞으로 9월까지 3개월은 미군은 물론 이라크 현지인들도 견디기 어려운 혹서가 계속된다. 이라크 국민들은 물과 전기가 끊어진 상태에서 최악의 여름을 나야한다. 더 큰 문제는 미국이 이라크 상황을 조만간 호전시킬 복안도 의지도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영국에서는 이미 군병력 장기 주둔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나올만큼 전후 이라크 안정화 계획이 난항을 겪고있다. ▲ 이란, 제2의 이라크 되나 = 이라크전 종료 후 시리아를 집요하게 압박하던미국은 이제 이란으로 공격목표를 돌리고 있다. 미국과 이란은 현재 크게 3가지 문제를 놓고 대립하고 있다. 미국은 이란이 알-카에다 배후세력을 비호하고 있고, 핵확산금지협정(NPT)을 위반한채 핵무기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또 이란이 이라크 시아파에 영향을 행사하려 하고 있고, 레바논의 헤즈볼라 게릴라들을 지원해 대 이스라엘 공격을사주하고 있다고 비난한다. 반면 이란은 미국의 신보수주의 강경파들이 이란의 이슬람 신정체제 붕괴를 시도하며 국내 학생시위를 부추기고 있다고 공박한다. 미국에 대해 즉각 내정간섭을중단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양국은 한달 전까지만 해도 제네바에서 관계 개선을 시사하는 대화채널을 가동했다. 그러나 지난달 사우디 아라비아 수도 리야드에서 발생한 연쇄 자폭테러 이후대화가 전면 중단됐다. 미국은 이란에 은신중인 알-카에다 지도자들이 사우디 테러를 배후 조종했다고의심하고 있다. 다른 서방 외교관들도 알-카에다 고위 간부들이 이란에서 활동하고있다는 미국측 주장에 공감한다. 이란은 지난해 500여명의 알-카에다 대원들을 검거해 국외 추방했다며 이란도 알-카에다의 피해자라고 반박하고 있다. 미국은 이란의 테러 배후지원 의혹과 함께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을 차단하는데주력하고 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최근 이란의 핵개발 의혹에 우려를 표명하고 핵사찰 확대를 촉구했다. 이란은 핵 프로그램 추진 사실을 인정했으나 발전 등 평화적 목적의 프로그램이라고 해명했다. 이란은 또 미국이 참여하는 핵사찰을 수용할 용의가 있다고 밝히고그 대신 선진국의 첨단 핵기술 접근이 허용돼야 한다는 조건을 달고있다. 이란은 러시아의 지원으로 남부 부시르항(港)에 핵발전소를 건설중이며 이 때문에 미국과 러시아 관계도 냉각 조짐을 보이고있다. 이란은 또 중부 도시 나탄즈에우라늄 농축시설을 건설중이며 미국은 이 시설이 핵무기 제조용으로 전용될 소지가 크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달초 테헤란 대학 등 이란 각지 대학에서 발생한 대학생들의 민주화 개혁시위는 미국의 대이란 정책을 적극적인 개입 쪽으로 전환시켰다. 미국은 그동안 이란 정권의 내부 붕괴를 희망하면서 반정부 세력들을 통한 간접 지원에 치중해왔다. 미국은 1979년 이란 이슬람혁명 후 테헤란 주재 미 대사관 인질사건의 악몽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을 비롯한 미국 지도자들이 이란의 정권교체를 직접 지지하고 나서면서 미국이 이미 이란의 민주화시위에 상당 부분 개입하고 있다는 추측을낳고있다. 미국이 현재로선 이란을 군사공격할 가능성은 크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양국간 현안들이 외교적으로 해결되지 않고 악화될 경우 미국이 궁극적으로 무력수단에 의지할 가능성을 완전 배제할 수 없다고 분석가들은 말한다. 이란은 미국에 도발 빌미를 줄수 있는 언행은 자제한다는 생각이지만 부시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할 경우 양국이 무력충돌을 벌일 가능성이 커질 것으로 우려하고있다. ◆ 이-팔 평화 로드맵 난항 =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전 종료 후 중동평화 로드맵이행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 공격에 앞서 전쟁에 반대하는 아랍권을 의식, 종전 후 이-팔 평화구도를 정착시키겠다고 약속했다. 부시대통령의 약속으로 이스라엘은 이라크전 개입을 자제했고, 팔레스타인 등 아랍 국가들의 반발을 진정시키는데도 일정 수준 기여했다. 부시 대통령은 마침내 지난 4일 요르단 아카바에서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총리들과 만나 로드맵 이행에 합의를 이끌어냈다. 그러나 합의 이행의 전단계인 팔레스타인 테러기반 척결과 이스라엘의 정착촌 철거가 양측 지도부에 부담으로 작용하면서 이행에 어려움을 겪고있다.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은 20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지도자들을 다시 만나 로드맵 이행의 전제조건인 팔레스타인 치안확보와 테러공격 중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보복공격 자제를 설득했다. 부시 대통령은 중동평화 정착에 강력한 의지를 표명했지만, 아랍권은 구체적 실행 능력과 의지를 의심하고 있다. 또한 야세르 아라파트 수반을 배제한채 마흐무드압바스 총리의 능력만으로 팔레스타인 과격단체들과 휴전합의를 이끌어내는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미국이 팔레스타인 최대 민중조직인 하마스를 `평화의 적'으로간주하는 적대정책을 버리지 않는 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들간 휴전은기대하기 어렵다. 더욱이 로드맵에는 이-팔 분쟁의 주변 당사국인 시리아와 레바논도 포함돼야 한다는게 아랍권의 요구지만 미국은 아직 이를 외면하고 있다. ◆ 중동 민주화 프로그램과 자유무역협정 = 이라크전 승리로 기세가 오른 미국은 중동질서의 완전 재편을 향한 전단계로 역내 민주화 프로그램을 발표했다. 자유민주주의 정치개혁과 인권 신장, 교육 개혁, 시장경제 도입 등 서구 민주주의 가치들을 수용하는 역내 국가들에 대해 자유무역협정 등 혜택과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것이다. 반면 이를 거부하는 국가들에는 정반대의 불이익을 경고했다. 미국은 심지어 사우디와 이집트의 학교 교과과정에까지 개편 압력을 가해 해당국의 반발을 사고있다. 이라크전에 반대했던 사우디와 시리아를 비롯해 미온적 지지에 그쳤던 이집트가미국의 민주화, 인권 시비 주요 대상국으로 떠올랐다. 이들 국가는 점진적인 내부개혁을 시도하면서 미국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위해 당분간 저자세 외교로 일관할전망이다. 미국은 그러나 이라크전에 적극 협력한 일부 걸프 왕정 국가들과 요르단에 대해선 최우선 혜택을 약속했다. 미국과 이미 자유무역협정을 맺은 이스라엘과 요르단외에 쿠웨이트와 카타르, 바레인이 가까운 시일내 협정을 체결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실제로 로버트 졸릭 미 무역대표부(USTR)대표는 19일 바레인의 하마드 빈 이사국왕과 만나 양국이 조만간 자유무역협상을 매듭지을 것이라고 밝혔다. 바레인은 미해군 5함대 기지가 있으며 과거 중동의 금융 중심지로 각광을 받았던 국가다. 바레인으로서도 아랍에미리트연합(UAE)에 빼앗긴 중동 경제 거점의 기능을 되찾기 위해 적극적인 친미 정책이 불가피해졌다. 카타르도 사우디가 담당했던 미국의 역내 군사 거점 역할을 떠맡으면서 부시 행정부의 총애를 받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지난달 카타르의 하마드 빈 칼리파 알 타니 국왕을 백악관에서 만나 자유무역협정 추진 의지를 재확인했다. 미국의 중동정책은 이라크전후 상벌(賞罰) 외교의 연장선상에서 추진될 것으로보인다. 미국은 요르단과 걸프 국가들을 제외한 다른 아랍국가들에게도 10년 안에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할 것을 제의했다. 그러나 아랍권은 역내 국가들에 대한 미국의 압박과 회유가 이스라엘을 아랍 정치.경제권에 편입시켜 항구적인 안보를 보장해주려는 속셈을 깔고 있다고 의심한다. 이 때문에 미국의 `당근과 채찍' 정책도 미국이 이라크에서 이미 경험한 것 처럼 아랍인의 마음을 사는데 끝내 실패할 것이라고 비판적 아랍국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카이로=연합뉴스) 정광훈특파원 barak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