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스(중증 급성호흡기증후군)에 감염된 대만인 의사가 오사카,교토 일대를 관광하고 돌아간 것이 들통난 후 일본 사회가 받은 충격과 분노는 이만저만이 아니다. 문제의 의사가 느긋하게 여가를 즐기다 돌아간 여행지는 어김없이 쑥대밭이 돼버렸다. 묵었던 호텔은 예약이 무더기로 취소되고,쇼핑차 들렀던 진주 가게는 폐업위기에 몰렸다. 오사카 제일의 명소로 사랑받는 오사카성내의 기념품 상점가는 휴업에 들어간다며 아예 문을 닫아 걸었다. 그가 콧노래를 부르며 타고 달렸을 관광열차는 뒤늦게 소독약 세례를 받고 있지만 겁먹은 손님들은 얼씬도 하지 않고 있다. 안그래도 장사가 안돼 허리가 휠 지경이라는 상인들은 대만인 의사에게 손해 배상이라도 청구하고 싶은 심정이라며 울먹이고 있다. 그러나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결과가 돼 버렸지만,이번 사태를 대하는 일본 정부와 국민들의 태도에는 한 가지 눈여겨 볼 만한 대목이 숨어 있다. 정보의 신속하고도 솔직한 공개다. 일본 정부는 방역망에 구멍이 뚫린 것이 드러난 후 대만인 의사의 일본 내 행적을 낱낱이 공개했다. 숙소는 물론이고 교통수단,이동 경로,식사 장소에 이르기까지 모든 정보를 제시했다. 일본 정부가 사스와의 싸움에서 솔직한 태도로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후생성은 사스 공포가 일본 열도에 상륙한 초기부터 일찌감치 사스 전담 병원을 지정,리스트를 언론에 공개했다. 주간지들은 어디를 찾아가야 빨리 고칠 수 있는지를 알려준다는 기사까지 게재했을 정도다. 사스 추정환자가 입원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걷잡을 수 없는 혼란이 일어난다며 펄쩍 뛰었다는 한국과는 전혀 다른 얼굴이다. 외국인들이 지적하는 일본인들의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폐쇄성이다. 하지만 이번 사태에서 일본인들은 국민 안전이라는 더 큰 것을 위해 작은 희생을 감수하는 지혜를 보여주었다. 쉬쉬하며 입을 닫고 있다가 큰 화를 입은 중국과 '나는 손해 보지 않겠다'며 손사래를 치고 보는 한국의 입장에서는 냉정히 새겨볼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도쿄=양승득 특파원 yangs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