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된 신문도 없고, 텔레비전이나 라디오 시청에 필요한 전기공급도 끊기고 상황을 속시원히 설명해줄 당국도 존재하지 않는 바그다드에서 절망과 공포에 빠진 시민들의 정보교환은 소문을 듣고 확대 재생산하는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배고픔과 좌절 속에 마땅히 할 일도 없는 사람들이 소일삼아 주고받는 소문들의 대부분은 사담 후세인의 운명에 관한 것이고 그 다음이 이라크의 석유에 관한 것이다. 후세인에 관한 소문중 최신의 것은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그를 미국에 숨겨놓고 있지만 그가 언젠가는 이라크로 돌아와 국민을 상대로 화학무기를 사용할 계획이란 내용이다. 그는 미국이 이라크 남부에서 몰래 빼돌리고 있는 석유수입중 자기몫을 챙기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혀 다른 소문도 있다. '후세인은 이미 8년 전 둘째 아들 쿠사이의 음모로 살해됐으며 쿠사이가 고용한 배우가 후세인 대역으로 텔레비전 등에 등장해 연기를 하고 있다', '후세인의 맏아들 우다이는 9일 항복했지만 미국은 우다이가 미국측 첩자이기 때문에 이같은 사실을 감추고 있다'는 것이다. 온갖 루머를 증폭시키는 것은 후미진 곳에 휘갈겨진 낙서들. 바그다드 시내 자유나 구역에서는 며칠 새 육교에 후세인 찬양 구호들이 새로 등장했다. "지도자 사담 후세인 만세"라는 점잖은 구호가 있는가 하면 "우리의 위대한 순교자들의 피를 묻힌 미군에게 흔드는 모든 손모가지를 잘라버리겠다"는 무시무시한 협박도 있다. 후세인의 생사나 행방이 알려지지 않은 가운데 이처럼 난무하는 소문과 주장들은 사태를 더욱 혼미하게 만들고 있다. 지난 달 9일 후세인이 마지막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으로 보도됐던 아자미야 지역에서는 9일 몇몇 남자들이 차를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관개부(灌漑部)에서 일하다 퇴직한 56세의 아흐메드 자셈 이사는 "후세인이 어디 있는 지 알고 싶으면 CIA에 물어보라. 그들이 후세인을 데리고 있다. 그는 CIA의아들이니까"라고 말했다. 후세인이 화학무기를 살포할 것이라는 소문은 오래 전부터 나돌았다. 처음에는 그가 자기 생일인 4월28일에 일을 저지를 것이란 추측이 있었지만 그날이 아무일 없이 지나가자 이번에는 바그다드 함락 한달째인 9일을 택해 결행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고 그 밖의 날짜들이 차례로 거론됐다. 후세인 다음으로 흔한 소문의 주제는 석유에 관한 것. 바그다드 주민들은 누구나 미국이 이번 전쟁을 벌인 목적이 이라크의 석유를 훔쳐가려는 것이라고 믿고 있으며 미국이 벌써부터 석유를 팔아 이익을 챙기고 있다는 것이 정설처럼 돼 있다. 한때 `사담 시티(도시)'라고 불리던 빈민가 시장에서 물건도 없는 식료품가게를 지키고 있던 카말 제한 바키시는 "후세인이 석유를 퍼가는 미국에게 자기 몫을 달라고 요구했다는 소문도 있고, 미국이 후세인에게 바그다드에서 빨리 떠나는 대가로 석유를 주기로 했다는 소문도 있다"고 말했다. 바키시는 후세인이 지금은 미국에 있지만 "그가 이라크로 돌아와 국가 재건을 위해 재집권할 것"이라며 이같은 주장의 근거로 "어떤 사람들이 후세인의 연설을 비밀 주파수 라디오로 들었다더라"고 말했다. 그러나 바그다드 은행 지점에서 경비원으로 일하는 하산 주마(31)의 얘기는 완전히 다르다. 그는 "사담이 1995년에 죽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동안 실권은 쿠사이가 쥐고 있었고 TV에 나온 후세인은 대역이라는 것이다. 최첨단 장비를 갖춘 미국이 후세인을 못 찾는 것은 그 때문이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또 쿠웨이트인들이 복수를 위해 석유를 퍼가고 빌딩에 불을 지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쿠웨이트인들이 미국인들과 함께 석유를 나르는 것을 내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고 말했다. 바그다드에는 이밖에도 온갖 종류의 소문들이 떠돌지만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슈퍼마켓 관리인은 혼자만 알고 있겠다고 했다. 그는 기자에게 "많은 소문을 들었지만 당신에게 말해 주지는 않겠다. 이중 어떤 것은 진실일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바그다드 AP=연합뉴스) youngni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