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 대통령과 내각 간의 유럽연합(EU) 가입에 대한 이견이 심각한 갈등으로 치닫고 있다. 바츨라프 클라우스 체코 대통령은 18일 치릴 스보보다 외무장관에게 서한을 보내 자신의 EU 관련 정책 발언에 대해 외무장관이 "불공정하고 정확치 못하며, 호도하는 논평을 했다"고 비난했다. 클라우스 대통령은 또 "비방 발언 해명을 듣고 최근 불거진 EU와 관련한 논란을토론하기 위해 외무장관을 대통령궁으로 초청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스보보다 장관은 이 초청을 거절했다고 외무부 대변인이 즉각 밝히는 등양측의 감정 싸움으로 비화되는 양상이다. 보수우파 야당 출신인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스피들라 총리가 이끄는 중도좌파집권 연정은 당초부터 EU 가입 문제를 둘러싸고 내심 갈등해왔으나 지난 16일 그리스 아테네에서 열린 EU 확대 협약 서명식 이후 사태가 갑자기 악화됐다. 총리 및 외무장관과 함께 조인식에 참가한 클라우스 대통령은 소감을 묻는 기자들에게 "EU 가입으로 체코 주권의 일정한 제한이라는 대가도 치르게 됐다"고 밝힌뒤 EU 정부 권한 강화 계획에도 의문을 표시했다. 체코 정부 공식 입장에 정면 배치되는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스피들라 총리 등내각은 강력히 비판했다. 특히 스보보다 외무장관은 기자들에게 "만약 법학과 대학생이 그러 말을 하면시험에 통과하지 못할 것"이라고 면박을 주면서 "EU 가입으로 우리가 주권을 잃는것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대통령은 유럽을 피상적으로 판단하고 있으며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사람이다. 이는 좋지 못한 현실이자 체코를 위해 바람직스러지 못한 일"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아테네 협약으로 체코는 내년 5월부터 EU에 가입할 동구권 등 10개국 명단에 공식 등재됐으며, 오는 6월 가입 찬반 국민투표를 실시할 예정이다. 현재 EU 가입에 회의적이거나 가입에 따른 문제점을 지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으며, 클라우스 대통령은 이런 여론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체코 정부는 일부 문제에도 불구하고 EU 가입은 불가피하고 경제적, 군사외교적 장점이 훨씬 크다고 홍보하고 있으며 여론조사 결과들에 비춰볼 때 국민투표에서 가입 지지표가 압도적일 것으로 낙관하고 있다. 클라우스 대통령은 자신이 EU에 대한 `현실주의자"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체코국내외에서는 그간의 행적을 들며 `회의주의자'로 보고 있다. 시민민주당(ODS)에 소속한 그는 우파 연립정부 총리를 맡고 있을 당시부터 체코의 EU 가입 자체는 지지한다면서도 가입에 따른 부정적 측면을 자주 강조해왔다. 클라우스 대통령은 체코 민주화 지도자 중의 한 명으로 체코가 시장경제로 전환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공산 체제 붕괴 이후 혼란기에 증폭된 보수적, 민족주의적 여론을 바탕으로 체코와 슬로바키아의 분리 독립을 주장해 결국 이를 관철했다. 당시 동구권 민주화의 대표적 지도자 바츨라프 하벨 전(前) 대통령은 통합 유지를 강력히 원했다. 한편 하벨 전 대통령이 국민들의 압도적 지지에도 불구하고 3선 금지 조항 때문에 물러난 이후 클라우스는 대통령에 출마했으나 3차투표에 이르도록 매번 3차 표결까지 가는 끝에 지난 2월 28일 의회에서 1표 차이로 가까스로 대통령에 선출됐다. 체코에선 대통령은 사실상 상징적인 국가원수이며 실권을 쥔 내각은 지난 2월총선에서 승리한 사민당과 소수 중도정당인 기독민주연맹, 자유당의 연립정부가 장악하고 있다. (베를린=연합뉴스) 최병국 특파원 choib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