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전쟁이 종결되고 이라크 석유 자원이 본격 개발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위상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OPEC은 그 동안 산유국들에 대해 생산 할당량을 부여함으로써 국제유가를 조정하는 등 석유시장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으나 사우디 아라비아에 이어 세계 2위의 원유 매장국인 이라크 석유가 시장에 쏟아져 나올 경우 OPEC의 생산 쿼터 제도가 크게 위협받을 것으로 관측통들은 보고 있다. 특히 미국과 이라크 차기 정부가 이라크 전후 복구자금 마련을 위해 이라크 원유 생산을 서두르고 아울러 OPEC의 생산 쿼터를 무시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딕 체니 미국 부통령이 "올해 안에 이라크 산유량을 하루 300만 배럴까지 늘려 전후 복구자금으로 충당하겠다"고 말한 것은 이같은 가능성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라크전 이후 국제석유 시장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크게 강화되는 것도 OPEC 영향력 감소의 또 하나의 이유로 지적되고 있다. 영국왕립국제문제연구소(RIIA)는 지난해 말 발간한 `이라크 석유의 미래: 시나리오와 그 함의'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미국이 이라크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후세인 정권을 축출하고 이라크에 친미 정권이 들어설 경우 국제 석유시장이 미국 주도로 재편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보고서는 이라크전에서 미국이 큰 인명과 재산의 손실 없이 승리하고 후세인 정권을 조기에 축출하며 이라크에 미국이 지원하는 정권이 들어서면 국제 석유시장은 미국에 의해 좌우되는 '유에스토피아'가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유엔은 이라크에 대한 석유 금수 조치를 신속히 해제하고, 미국의 대형 정유사들이 앞다퉈 이라크에 투자하면서 이라크의 산유량은 2005-2006년에는 하루 400만배럴, 2010년에는 600만배럴까지 급증할 것으로 보고서는 내다봤다. 미국 자본에 의해 이라크 석유가 국제시장에 쏟아져 들어올 경우 OPEC의 생산량및 가격조절 기능은 큰 타격을 입을 것이며 심지어 OPEC가 붕괴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런던 소재 국제에너지연구센터(CGES)는 이라크가 종전 이후 석유 생산을 늘리기 위해 OPEC을 탈퇴할 경우 OPEC의 붕괴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CGES는 이라크 석유산업이 민영화되고 이라크가 전후 복구비용 마련을 위해 산유량을 늘리려면 OPEC의 생산량 할당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며 이에 따라 이라크차기 정부는 OPEC을 탈퇴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원유매장량 2위를 자랑하는 이라크가 독자노선을 걷는다면 현재 세계 산유량의 40%를 차지하는 OPEC의 시장 지배력은 크게 줄어 결국 유명무실한 기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라크 석유가 OPEC의 시장 지배력을 위협할 만큼 생산되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하다. 이라크가 하루 500만-600만 배럴의 원유를 생산하려면 대규모 시설 투자와 기존 시설의 보수가 필요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또한 이라크 전후 복구사업에서 유엔 역할을 둘러싼 분쟁과 러시아 및 유럽국가들이 이라크 석유 자원에 대한 기득권을 요구할 경우 예상되는 미국과의 마찰 등으로 급속한 생산 증대가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OPEC은 감산을 통한 유가 안정화 방안을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OPEC은 오는 24일 빈에서 열리는 임시총회에서 유가 안정을 위한 `모든 시나리오'를 논의할 예정이다. OPEC이 이번 임시 총회에서 하루 200만 배럴 감산을 결정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이라크전 종전이 임박하면서 하락세를 보이던 유가가 다시 상승세로 돌아서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국제유가는 이라크전을 앞두고 지난 2월27일 배럴당 40달러선에 육박하는 등 폭등세를 보이다가 최근 배럴당 25달러 안팎으로 급락했다. OPEC이 자체 설정한 유가밴드(band.상.하한 가격대)의 최저선은 배럴당 22달러다. (서울=연합뉴스) 송병승 기자 songb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