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수도 바그다드 남쪽 80㎞ 지점에는 메소포타미아의 고대도시 바빌론의 유적이 있다. 3천년의 역사를 지닌 이 도시는 신바빌로니아왕조 네브카드네사르 2세 치하(재위 BC 605~562)에서 전성기를 구가했지만,페르시아 제국의 침공을 받아 점령당한 선례가 있다. 1백여년 뒤 '역사의 아버지' 헤로도투스는 2차에 걸친 바빌론 점령의 역사를 기록하면서 그때마다 탁월한 책사가 없었다면 침공은 실패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3일 바그다드 진격을 눈앞에 둔 미·영연합군은 헤로도투스의 '역사'에서 책사의 지혜를 빌려야 성공할 것이라고 지적,주목된다. 그 지혜는 우회전술과 위장된 아군의 투입이다. BC 539년 페르시아제국의 키로스 왕은 유프라테스강을 끼고 긴 성곽과 해자(성밖을 둘러 판 못)로 무장한 바빌론을 포위했지만,난공불락이었다. 철군을 결심하기 직전 한 사병이 유프라테스강의 물줄기를 북으로 돌린 다음 마른 하상을 건너 성으로 진격하는 방안을 제시했고,그 결과 절대 함락시키지 못할 것 같던 바빌론은 무너졌다. 바그다드 진격군이 배워야 할 첫번째 지혜는 이같은 우회전술이다. 페르시아 점령하의 바빌론 시민들은 16년 후 대규모 폭동을 일으켰다. 페르시아 다리우스 대왕의 오른팔인 조피루스가 멋진 계책을 냈다. 코와 귀를 잘라낸 처참한 모습으로 바빌론에 위장망명한 조피루스는 자신을 학대한 다리우스의 복수를 자청하며 신임을 얻고 마침내 방위사령관에 임명되었다. 다리우스와 밀약한 날 그는 페르시아군을 위해 성문을 활짝 열었다. 미·영연합군은 전쟁 초기부터 후세인 측근의 반란을 통한 체제붕괴를 모색해왔다. 그러나 기대한 반란이 여의치 않다면 위장된 배신자를 바그다드에 들여보내는 것도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이 신문은 주문했다. 우종근 기자 rgbac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