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전의 기대감에 들떠 있던 국제금융 및 원자재시장의 분위기가 25일 갑자기 싸늘해졌다. 이라크 전선 안팎에서 날아오는 전황 뉴스들이 장기전을 예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의 결사항전 선언과 이라크군의 거센 저항으로 단기전에 대한 기대는 약해졌다. 이에 따라 개전초 단기전 기대로 지난 일주일간 강세를 보였던 세계증시는 급락세로 돌변했다. 떨어지던 국제유가도 다시 오르고,달러화도 약세로 돌아섰다. 앞으로 시장은 전쟁진행 상황에 따라 춤추는 '전황(戰況)=시황(市況)'의 전황장세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 고조되는 장기전 우려 개전 5일째인 지난 24일부터 고개를 들기 시작한 장기전 우려는 단기전 기대를 압도하고 있다. 무엇보다 파죽지세로 바그다드를 향해 진격하던 미.영 지상군이 바그다드남쪽 80㎞ 주변에서 이라크군의 거센 저항에 부딪치고, 북쪽에서는 연합군의 전선이 제대로 구축되지 않고 있는 탓이다. CNN방송은 24일 미 관리의 말을 인용, "이라크 지도부가 바그다드 외곽에 '레드 라인'을 설정하고 미.영지상군이 이 지역내로 진격해 오면 공화국수비대에 화학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고 보도, 장기전 우려를 더욱 고조시켰다. 수많은 사상자를 낼 화학전은 단기전의 최대 장애물 중 하나로 지적돼 왔다. 실제로 연합군 지도부도 장기전 가능성을 숨기지 않고 있다. 부시 미 대통령은 25일 의회에 7백47억달러의 전비를 요청하면서 전쟁기간을 최장 6개월로 잡았다.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도 전황 브리핑에서 "힘들고 어려운 전쟁이 될 수도 있다"며 섣부른 단기전 기대감을 경계했다. ◆ 고개 숙인 전쟁랠리 장기전 우려는 시장의 '전쟁 랠리' 기조를 단숨에 꺾었다. 뉴욕증시는 24일 8일간의 상승세를 접고 급락했다. 다우지수는 3백7.29포인트(3.6%) 떨어진 8,214.68로 마감, 심리적 지지선인 8,500선이 하루만에 무너졌다. 나스닥지수도 3.7% 급락했다. 6개월만의 최대인 이날 낙폭으로 다우와 나스닥주가는 모두 개전 이전 수준으로 돌아갔다. 이어 25일 열린 아시아의 일본 홍콩 대만주가도 낙폭은 상대적으로 작았지만 일제히 1~3%씩 떨어졌다. 증시가 급락하면서 국제유가는 정반대로 치달았다. 미 서부텍사스중질유(WTI) 5월 인도분은 24일 뉴욕시장 정규거래에서 1.75달러(6.5%) 급등한 28.66달러로 마감, 개전후 하락분의 절반을 잃어버렸다. 유가 오름세는 25일 장외거래에서도 지속돼 39센트가 더 오른 29.05달러로 고유가 경계선인 30달러에 육박했다. 주가와 동반 급등하던 달러가치는 엔화에 대해 5일만에 다시 달러당 1백20엔 밑으로 떨어졌다. 25일 도쿄시장의 달러값은 1백19.80엔으로 지난 이틀간 2.08엔(1.7%) 밀려났다. 전문가들의 향후 전망은 엇갈리고 있다. "전쟁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고 있어 주가는 좀 더 떨어질 것"이라는 푸르덴셜증권의 래리 와첼 수석애널리스트의 지적처럼 불리한 전황과 전후 미 경제회복 부진 등으로 하락세가 지속될 수 있다는게 일반적 예상이다. 그러나 "결국엔 미국의 승리로 끝날 것이므로 전쟁랠리가 끝났다고 볼 수 없다"(살로먼스미스바니증권의 토비아스 레브코비치)며 전쟁랠리의 부활을 점치는 시각도 있다. 이정훈 기자 lee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