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태어나 일본말을 하며 자랐다 해도 일본고교를 다니지 않은 재일교포 자녀들에게 국립대학은 '좁은 문'이다. 민단계학교건,조총련계학교건 문부과학성이 고교 졸업자격을 인정하지 않아서다. 때문에 국립대에 가고자 하는 학생들은 한국의 검정고시와 같은 별도 시험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된다. 사립대는 외국인특별전형으로 문턱을 낮춰 놓았지만 수업료가 곱절 이상 비싸니 선택 폭이 좁을 수밖에 없다. 일본 학생들과 동등한 조건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교포 학교들의 숙원은 이달 초에도 또 다시 물거품이 됐다. 문부과학성이 학교법 시행규칙을 개정하면서 졸업자격을 인정하는 외국인학교에서 교포 학교를 제외시킨 탓이다. 문부성은 일본에서 문을 열고 있는 40개 외국인고등학교 중 구미계의 16개교엔 자격을 인정했다. 그리고는 이들 구미계학교는 미국의 WASC(서부지구기준협회)등 국제적 학교평가기관이 학력을 인정하고 있다는 이유를 달았다. 미국과 유럽에서도 실력을 알아주는 학교들이니 국립대학 입학자격을 준다 해도 무리가 없다는 셈이었다. 그러나 속내를 들여다 보면 구미 평가기관을 핑계삼아 이웃을 홀대하고,정치적 조류에 휘말려 들어갔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문부과학성은 개정작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교포 학교에도 자격을 인정하는 방안을 검토해 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3,4대에 걸쳐 일본에 거주하는 교포가 수십만명을 헤아리는데다,상당수 사립대학이 교포학생을 받아들이는 현실에서 이들 학교를 외면하는 것은 비합리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지난해 말부터 북한의 일본인 납치와 핵문제가 불거지면서 상황은 뒤틀리기 시작했다. 일본언론은 문부과학성 관리의 말을 인용,'조총련계 학교에 자격을 인정한다는 것은 국민의 이해를 얻기 힘들다'며 북한에 대한 악감정이 배경 중 하나로 작용했음을 지적하고 있다. 대학의 빈 강의실이 늘어나도 50년 이상의 뿌리를 가진 교포 학교에는 별도 시험을 강요하는 문부과학성의 결정이야말로 교육을 정치와 국민감정의 볼모로 삼는 사례에 다름 아니다. 도쿄=양승득 특파원 yangs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