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을 보호하라" 이라크 전쟁의 먹구름이 짙어지면서 이라크 안팎의 유전지대 보호가 발등의 불이 됐다. 전쟁 대비 상황을 점검하기 위해 7일 찾아간 쿠웨이트 남부 부르간 유전은 요란한 굉음을 울리며 여전히 원유를 뿜어올리고 있었다. 사우디 아라비아의 알 가왈 유전에 이어 세계 2위 규모인 부르간 유전은 1991년걸프전 당시 이라크가 퇴각하면서 불을 질러 엄청난 피해를 입었던 곳. 당시 이라크군은 연합군의 공격으로 쿠웨이트로부터 물러날 수 밖에 없게 되자600여개에 달하는 쿠웨이트 유정에 불을 질러 불길을 잡는데 만도 9개월이 걸렸다.또 방화하지 않은 유정에까지 불길이 번져 700개 가까운 유정이 불탔으며 손실 원유량이 10억배럴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쿠웨이트석유공사(KOC) 산하 부르간 유전에서 일하는 엔지니어 파드 두사리씨는걸프전 당시 외국으로 피신했다 돌아와 보니 "화염 때문에 쿠웨이트가 완전히 암흑으로 변해 있었다"고 말했다. 두사리씨는 "이라크군이 지하에 폭발물을 묻어 유정을폭파했기 때문에 피해가 컸다"며 "낙타와 새, 물고기 등 각종 생물들이 떼죽음을 당했고 오염이 이란과 인도에까지 영향을 미쳤다"고 회고했다. 당시 이라크군의 폭발로 파괴된 후 지금까지 흉물스런 모습으로 방치돼 있는 부르간 유전의 14번 GC(원유수집센터)는 유전파괴가 얼마나 가공스런 것인가를 생생히말해주고 있다. 걸프전 때 이처럼 쓰라린 유전파괴를 경험한 쿠웨이트로서는 유전보호야 말로이번 전쟁의 최대 과제가 아닐 수 없다. 또 석유 때문에 이라크전을 벌인다는 지적까지 받고 있는 미국도 이라크 안팎의 유전을 지켜내지 못한다면 전쟁 목표의 상당부분을 달성하지 못하는 꼴이 된다. KOC 관계자들은 이런 유전보호의 중요성 때문에 전쟁에 대비한 완벽한 안전체제를 구축해놓았다고 강조했다. KOC는 우선 전쟁의 불똥이 튈 가능성이 큰 북부 압달리와 리카 2개 유전의 가동을 중단했다. 하루 40만배럴에 달하는 이들 유전의 생산량은 남부 부르간 유전 등에서의 증산으로 충당해 하루 210만배럴인 쿠웨이트 전체산유량을 그대로 유지한다는 방침이다. 에마드 술탄 부르간 유전 생산책임자는 전쟁이 일어날 경우 "유전 폐쇄를 포함한 모든 안전대책을 수립해놓았다"고 말했다. 술탄씨는 "이라크가 미사일로 유전을 공격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지는 잘 모르지만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시나리오별 대책을 수립해놓았으며 그에 따라 직원 철수,유전 폐쇄 등 필요한 모든 조치가 취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쟁이 일어날 경우 쿠웨이트 유전 방어의 1차적인 책임은 미군과 쿠웨이트군이맡고 있다. 이라크가 발사하는 미사일이 유전지대에 떨어지기 전에 요격해내야 하기때문이다. 미군과 쿠웨이트군은 이에 대비해 첨단 패트리어트 미사일을 배치놓았으며 미 해군 함정들도 걸프해 연안의 유전과 유조선 방어 임무에 가담하고 있다. 또 미 해안경비대가 기름 유출에 대비해 경계태세를 갖추고 있으며 세계 각국이공동 참여하는 진화대책도 마련돼 있다. 쿠웨이트 내 테러분자들이 전쟁을 틈타 유전 폭파에 나설 경우에 대한 대비책은쿠웨이트 내무부 담당이다. 쿠웨이트 치안당국은 전운이 고조되면서 유전지대에 대한 경비병력을 늘렸으며 화생방 공격 등에 대비한 비상훈련도 여러차례 실시했다고KOC 관계자는 설명했다. 걸프전 때의 유전 파괴 악몽을 잊지 못하는 파드 두사리씨는 "이번에는 별 일이없을 것으로 기대하지만 모두 돌발 상황을 우려하는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부르간=연합뉴스) 이기창특파원 lkc@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