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he Economist 본사 독점전재 ] 유럽과 미국 중 어디가 더 젊을까. 미국은 반사적으로 유럽을 '낡은 대륙'(clapped-out old continent)이라고 부른다. 여행하기는 좋지만 비전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반면 유럽은 미국을 '현대 악의 화신'(embodiment of all the evils of modernity)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유럽과 미국간의 '연령논쟁'은 최근 이라크사태의 논의과정에서 더욱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도널드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은 이라크사태에 대한 프랑스와 독일의 비협조를 겨냥,'늙은 유럽'(Old Europe)이란 표현을 써가며 분노를 나타냈다. 이에 대해 많은 유럽인들은 미국을 '사회구조가 경직되고 미래에 대한 공포가 많은 나라'라고 맞받아쳤다. 과연 유럽과 미국의 '나이차이'가 이처럼 큰 것일까. 유럽이 미국보다 역사가 깊다는 것은 인정한다. 유럽은 분명 고대풍의 '성'(城·chateau)을 자랑하는 반면 미국에는 디즈니랜드가 있다. 하지만 미국은 결코 '풋내기 국가'가 아니다. 이주자들이 신대륙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했을 때는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이 영국을 통치했었고,영국(England)이 대영제국(The great Britain)으로 바뀌기 전이었다. 미국이 자랑하는 하버드대도 1636년에 세워졌다. 미국의 독립선언(1776년)도 독일과 프랑스가 통일되기 전에 이뤄졌다. 미국은 나이가 젊을지 모른다. 하지만 미국인들이 개인의 총 소지,낙태허용 여부 등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는 유럽인들보다 훨씬 더 전통적인 가치에 의존한다. 미국 교회는 일요일마다 정장을 차려입은 사람들로 북적댄다. 공공행사는 거의 애국가로 시작되고,길거리 판매대에는 가슴을 드러낸 잡지들이 유럽보다 훨씬 적다. 미국의 정치시스템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것 중 하나다. 1787년에 만들어진 헌법은 '세계 최고(最古)'수준의 명문헌법이다. 미국의 공화당과 민주당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정당이다. 미국은 1791년 이후 거의 헌법을 수정하지 않았다. 기껏해야 1913년 상원의원을 직접선출 방식으로 바꾼 것 정도다. 반면 프랑스는 1789년 이후 통치형태가 다섯번이나 바뀌었다. 미국에서는 '건국 영웅'들을 다룬 책들이 정기적으로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오른다. 이에 비해 유럽인들은 자신들의 과거에 그리 연연해 하지 않는다. 세계전쟁에도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다. 또한 미국인들은 자신들의 과거 일부를 기피하려는 경향이 있다. 조상들이 아메리카 인디언들에게 했던 행위,시민전쟁 등이 바로 그런 것들이다. 미국은 '젊은' 자신들만이 새로운 변화를 선도할 수 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뉴유럽'(유럽연합·EU)을 탄생시킨 것은 바로 '고리타분하고 늙은' 유럽이다. 새로운 공동통화(유로)는 아직 기저귀도 벗지 못했다. 2004년에는 회원국이 10개나 늘어난다. 반면 워싱턴의 전통주의자들은 여전히 그들의 헌법에 만족해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일부는 EU가 이라크문제를 놓고 심각하게 분열돼 있다고 지적한다. 프랑스가 유럽내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해 '이라크카드'를 이용하고 있다는 비난도 있다. 하지만 유럽은 국제사회가 초국적 룰과 협상에 의해 움직이기를 원한다. 유럽을 늙었다고 매도하는 미국은 먼저 자신 스스로를 거울에 비춰봐야 한다. 정리=신동열 기자 shins@hankyung.com -------------------------------------------------------------- ◇이 글은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최신호(2월28일)에 실린 'Old America V New Europe'을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