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3월27일 한국 국방부는 차세대 전투기를 확정 발표했다. '4백억달러'의 물량을 놓고 벌인 싸움의 승자는 프랑스 라팔전투기를 물리친 미국 보잉사의 F-15. 왜 단종되는 전투기를 사느냐는 비난이 쏟아졌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바로 다음날인 28일 미 신용평가사인 무디스가 한국의 신용등급을 Baa2에서 A3로 두단계 올렸다는 뉴스가 '전투기'논쟁을 가볍게 잠재웠기 때문이다. 우연의 일치였을까? 가장 보수적 신용평가회사란 소리를 듣는 무디스가,그것도 등급조정 역사상 6번에 불과했던 '2단계 상승'을 해준 것은 당사자인 한국정부조차 놀랄 만한 '사건'이었다. 하지만 월가는 이를 전투기 구매에 대한 미국정부의 '선물'로 해석했다. 항공모함 등 비싼 무기를 사주는 '맹방'들에 신용등급을 올려주는 관행을 월가에선 삼척동자도 아는 탓이다. 그런 무디스가 한국의 등급전망을 2단계 떨어뜨렸다. '북핵 위기'가 표면상의 이유다. 하지만 지난달 한국에 실사차 다녀왔던 토머스 번 한국담당국장은 이달초 뉴욕 코리아 소사이어티 주최 모임에서 "등급을 내릴 이유가 없다"고 얘기했다. 결과적으로 이번 등급조정에 '보이지 않는 손'의 개입이 있었음을 암시해주는 대목이다. 국제 금융계에선 미국의 신용평가회사들을 미국 국가이익의 대변기관으로 생각한다. 이번 '조정'도 북핵 위기 자체보다는 위기해법을 둘러싼 시각차와,한국내의 반미 감정에 대한 불만의 표현이라는 해석이다. 신용등급이 한등급 떨어질 때마다 차입금리가 0.1~0.2%포인트 높아지는 점을 감안하면 남한이 북한보다 먼저 '한방' 맞았음을 뜻한다. '신용등급조정'이란 폭탄의 위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97년의 외환위기도 신용등급 하락에서 시작됐음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최근 워싱턴 방문을 마치고 뉴욕에 들렀던 장영달 국회 국방위원장은 "대미 정책노선의 결정은 우리 경제의 힘이 어느 정도냐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친미가 좋은지 반미가 좋은지는 새정부에서 국민의 뜻을 잘 파악해 결정해야겠지만,분명한 것은 그에 앞서 우리 경제에 대한 냉철한 현실인식이 우선돼야 한다는 얘기로 들렸다. 뉴욕=육동인 특파원 dong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