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워싱턴DC에서 열린 이라크 반전시위는 택일만 남은 것처럼 전쟁준비에 몰두해 있는 듯한 백악관에 적잖은 부담을 줬다. 시위 첫날엔 3만∼5만명이 전쟁으로 치닫는 강경파를 비난했다. '석유를 위해 피를 흘려선 안된다''평화의 적은 후세인이 아니라 조지 W 부시다'라는 구호까지 외치던 시위대 숫자가 이틀째인 19일엔 영하 10도의 강추위 탓인지 현저히 줄었다. 하지만 이날 시위대는 국회의사당에 모였던 첫날과 달리 백악관 앞까지 진출,경찰과 충돌을 빚기도 했다. 한 참석자는 "백악관이 우리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도록 최대한 가까이 접근하려 했다"고 말했다. TV에선 시위대의 함성 못지 않은 의미있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발언의 주인공은 콜린 파월 국무장관.흑인으로서 행정부에서 가장 높은 직위까지 올라간 그는 인종문제를 놓고 부시 대통령에게 반기를 들었다. "미시간대학의 소수계(흑인,히스패닉) 우대정책이 헌법정신에 어긋난다"고 비판한 부시 대통령의 결정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국무장관이 TV에 출연,대통령과 다른 의견을 갖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발언한 것은 이례적인 일.주요 언론들은 이를 즉각 의미있게 보도했다. 인종문제는 이라크 전쟁만큼이나 미국 사회를 분열시킬 수 있는 폭발성 있는 이슈다. 부시 대통령이 미시간 대학의 소수인종 우대제도에 위헌 요소가 있다고 발표한 후 미국사회는 소수계 우대 적용범위를 놓고 격렬한 논쟁에 빠져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흑인 국무장관이 백인 대통령과 뜻을 같이 하지 않는다고 발표,논란을 더욱 격화시켰다. 행정부내의 일사불란한 목소리를 철칙으로 삼는 백악관에도 적잖은 타격이었다. 백악관이 이 문제를 어떻게 정리해 국민들을 설득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반전의 함성 또한 전쟁 신중론으로 기울고 있는 세계 여론과 맞물려 백악관의 입지를 좁혀갈 것 같다. 일반 국민들의 전쟁 지지도가 약해지면서 부시 대통령의 업무수행 지지도 역시 60% 이하로 떨어졌다. 백악관을 감싸고 도는 기류가 순탄치 않아 보인다. 워싱턴=고광철 특파원 gw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