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과 이라크가 지난 1일 무기사찰 재개 절차에 합의한 가운데 미국과 영국이 기존의 유엔 결의안이 아닌 보다 강력한 내용의 새 유엔 결의안에 따른 사찰을 주장하면서 이라크 사찰 문제를 둘러싼 세계의 여론이 첨예한 대립 양상을 띠고 있다. 미국과 영국이 유엔과 이라크의 합의에 반대의 뜻을 표하고 사찰저지 의사까지 밝힌 반면 나머지 유엔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프랑스, 러시아는 유엔-이라크의 사찰합의 결정을 환영하는 입장이다. 그러나 중국과 프랑스가 이라크에 대한 무기 사찰을 즉각 재개할 것을 요구하며 유엔-이라크 합의에 힘을 실어준데 반해 러시아는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새 유엔 결의안 채택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고 밝혀 미국의 편에 동조할 수도 있다는 의중을 내비쳤다.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을 제외한 세계 각국이 대부분 미국이 제안한 '새로운 유엔 결의안'의 필요성에 동조하지 않는 가운데 미하일 고르바초프 옛 소련 대통령과교황청도 미국의 이라크에 대한 일방적인 공세에 우려를 표시했다. 고르바초프 전대통령은 2일 오스트리아 국영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이 이라크의 입장을 듣지 않을 것이라면 우방인 중국.러시아.프랑스의 입장을 경청해야 한다"며 "전쟁은 모든 관계에 치명타를 가할 뿐 아니라 유엔과 유엔안보리에 심각한위험을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교황청 유엔 대사인 레나토 마르티노 대주교도 이탈리아의 가톨릭 주간지 '파미글리아 크리스티아나' 기고문을 통해 "전쟁이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을 것"이라며 미국의 일방주의에 대해 거듭 우려를 표시했다. 지난 90년 이라크의 침공을 받았던 쿠웨이트의 셰이크 자베르 무바라크 알 사바흐 국방장관는 이날 러시아를 방문한 자리에서 유엔 결의없는 어느 한 나라에 의한이라크 공격에 동조하지 않는다며 이 문제에 관해 "러시아와 같은 입장"이라고 전했다. 한편 지난달 30일 싱가포르의 스트레이츠 타임스가 아시아 10개국의 의회 의원, 정부 고위 관리, 외교관, 기업체 고위 간부 등 100여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85%가 유엔의 위임 없는 미국의 이라크 공격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힌 데 이어 유럽 지역에서도 미국의 이라크 공격에 반대한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속속 발표되고 있다. 스위스 대중지 블릭의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의 80%가 부시의 강공책에 반대 입장을 나타냈으며 이탈리아의 '파미글리아 크리스티아나'도 응답자 1천명중 약 90%가 이라크 공격을 반대한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보도했다. 영국의 경우 토니 블레어 총리는 연일 이라크에 대한 비난 수위를 높이며 미국의 동반자 역할을 자처하고 있지만 대다수의 국민들 사이에는 유엔의 유효한 결의가결여된 이라크 공격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지난 1일 이라크 공격에 대한 영국 국민의 지지율이 33%에 불과한 반면 전쟁에 반대한 응답자는 44%를 기록했다고 보도, 영국 정부와 국민의 입장이 같지 않음을 시사했다. (파리.모스크바.빈.바티칸시티 AFP=연합뉴스) eyebrow76@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