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he Economist 본사 독점전재 ] 북·일 정상회담은 '은둔의 왕국'이 드디어 껍질을 깨고 나오고 있음을 전세계에 보여줬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와의 첫 정상회담에서 놀라운 고백을 했다. 일본 국민을 납치했다고 시인한데 이어 사과까지 했다. 일본은 오랫동안 일본인 납치에 대한 정보를 요구해 왔지만 북한은 납치 사실 자체를 부인해왔다. 양국이 이전에도 대화를 갖기 위한 시도를 했으나,일본인 납치문제가 걸려 번번이 무산됐다. 게다가 북한은 일본이 식민 지배에 대해 1백억달러 이상을 배상해야 한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일본의 관료들은 최근에야 북한의 변화를 감지했다. 일본 지도자들은 외교문제에 관한 한 조심스럽기로 유명해 대담한 외교적 제스처를 취하는 경우가 드물다. 그러나 고이즈미 총리는 결단을 내렸다. 그는 하룻동안의 방북으로 외교적 돌파구를 마련했다고 자신할 수 있을 만큼 김 위원장으로부터 충분한 약속을 받아냈다. 북한이 납치에 대한 책임을 짐으로써 최소한 양국은 국교 정상화 교섭을 재개할 수 있는 길을 텄다. 김 위원장은 회담에서 "일본인 납치가 후회스럽고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남한에 파견할 간첩을 위해 일본어를 가르칠 목적으로 군부의 일부 관계자들이 납치를 했다는 사실을 시인했다. 일본 정부는 1970년대와 80년대에 북한 정보기관에 의해 11명의 자국민이 납치됐다고 주장해왔다. 물론 일본의 일부 시민단체들은 납치 피해자 숫자가 더 많을 것으로 믿고 있다. 어쨌든 고이즈미 총리는 일본인 납치에 대한 정보를 얻는다는 회담목표를 달성했다. 김 위원장도 고이즈미 총리에게 다양한 약속을 해 한국 미국 등 다른 나라의 지도자들로부터 공감을 얻을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은 미사일 발사실험을 2003년 이후에도 계속해서 유예하겠다고 약속했다. 핵 프로그램에 대한 모든 국제협약 준수도 다짐했다. 양 정상은 무기사찰단이 북한의 핵시설을 사찰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데도 합의했다. 북한은 또 이번 정상회담으로 일본으로부터 저리 차관 등 적지 않은 경제지원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이라크 및 이란과 함께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악의 축'으로 지목됐다. 북한은 이라크 사태를 지켜 보면서 무기사찰단의 입국을 허용하지 않을 경우 정권교체 압력에 직면할 수 있음을 우려했을 것이다. 북한은 지난 94년 핵무기 개발 의혹을 받은 프로그램을 2기의 경수로와 맞바꾸기로 약속했으나,미 관료들은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전문가들이 경수로가 설치된 곳을 사찰하는 것을 막아 약속을 어겼다며 비난해왔다. 미국은 여전히 북한에 대해 의심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북한 정권은 예측하기 힘들며,이전에도 약속을 번복한 적이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북한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회담에 나선 것인지, 진실로 개혁할 의지가 있는지에 대해 확신을 갖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한 관료는 "현재의 동기가 무엇이든 북한 정권은 여전히 악"이라고 말했다. 다른 깡패국가들을 상대로 하는 미사일 기술 판매상이라는 것이다. 정리=오광진 기자 kjoh@hankyung.com -------------------------------------------------------------- ◇이 글은 이코노미스트 인터넷판 최근호(9월17일자)에 실린 'In from the cold'를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