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딴 각료들의 사임으로 연정이 붕괴되는 등 정치 마비상태에 빠진 터키의 위기상황이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뷜렌트 에제비트(77) 총리는 9일 사임한 후사메틴 오즈칸 부총리의 후임에 수크루 시나 구렐 키프로스 담당 장관을 임명하는 등 내각을 개편했다. 그는 주로 자신의 충성파들로 사임한 각료들의 빈자리를 메우면서 반대파들이 요구하는 하야나 조기총선을 실시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했다. 이에 따라 총리의 건강문제로 촉발된 터키 정국의 혼란은 총리반대파와 이에 맞선 에제비트 총리파간 힘겨루기 양상으로 비화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경제위기 해소와 유럽연합(EU) 가입 등 현안이 산적한 터키는 또다시 `정치암초'에 부딪혀 상당기간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전망되고있다. 이날도 3명의 각료들이 추가로 사임함에 따라 연정의 붕괴는 더욱 확실하게 됐다. 또 터키 집권 연정 소속 중도우파 모국당(ANAP)의 지도자인 메수트 일 마즈 부총리도 조기 총선 실시를 요구하는 등 에제비트 총리에 대한 압박을 강화했다. 그러나 에제비트 총리는 충성파들로 구성된 내각의 개편으로 맞서는 강수를 던졌다. 정치분석가들은 일단 연정의 붕괴로 정치.경제적 개혁의 물꼬가 트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하지만 연정붕괴는 또다른 정치적 투쟁이 상당기간 지속될 가능성을 남겨놓고있다. 관건은 조기총선 실시여부에 쏠려있다. ANAP와 극우 민족행동당(MHP) 등 연정내 총리 반대파들은 `9월' 등 구체적인 시기를 못박으며 조기총선 압력을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에제비트 총리는 임기를 채우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있다. 이 경우 2004년 전에는 선거를 할 수없는 상황이다. 현지 언론인들이 에제비트 총리와 그의 추종자들에게 터키의 현실을 직시하라고촉구하고 있지만 에제비트 총리의 마음이 움직여질 지 여전히 불투명하다. 특히 터키의 정치적 혼란은 결정적인 순간에 일어났다고 분석가들은 지적한다.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내 유일한 이슬람국가인 터키는 지난달 아프가니스탄평화유지병력의 지휘권을 넘겨받았다. 이런 터키에 대해 미국은 서구세계와 미래를함께 한 이슬람 국가의 역할모델로 인식하고 강력히 지지하고있다. 또 미국은 이라크에 대한 공격을 상정하면서 이라크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터키가 기지를 제공하는 등 지원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경제적으로도 터키는 매우 중요한 시기를 맞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1999년부터 터키 경제회복과 경제개혁을 위해 310억달러를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이번 사태로 경제회복 프로그램이 지장을 받게됐다. 또 미국의 신용평가기관 스탠더드앤푸어스(S&P)는 9일 터키의 채권등급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강등했다. 특히 터키의 금융시장은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있다. 채권금리는 지난 5월초 50%였던 것이 채권 롤 오버문제가 제기되면서 75%로 급등했다. 또 이스탄불 주식시장은 20% 이상 급락했고, 통화가치는 달러대비 18%나 떨어졌다. 9일에도 증시 지수는 1.84% 떨어졌으나 재무부에 의한 두번의 채권 경매 성공을볼때 투자자들이 아직은 희망을 갖고 있음을 시사해주고있다. 이런 가운데 터키 경제개혁을 주도하고 있는 케말 더비스 장관과 이스마일 켐외무장관이 이번 거사를 주도한 후사메틴 오즈칸 부총리가 이끄는 새로운 정치운동에 가세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돌아 주목되고있다. 일각에서는 2003년 조기총선을 위한 임시정부가 세우질 것이고 이 정부내에서더비스 장관이 주요한 위치를 차지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돌고 있다. 한편 터키의 EU 가입문제도 현안이다. 유럽 지도자들은 터키의 EU 가입 공식논의가 올해말까지 시작될 수있으나 터키가 사형제도를 폐지하고 소수민족인 쿠르드족의 권리를 확대하는 등 개혁을 시도할것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ANAP 지도자인 메수트 일 마즈 부총리는 "EU의 개혁이 올 12월 전에 실현되려면 새로운 정부가 구성돼야 할 것"이라면서 만일 그런 정부가 구성되지 않을 경우 의회는 9월 조기총선 실시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소집돼야한다고 강조했다. EU와의 관계를 놓고는 에제비트 총리 반대파간의 입장도 엇갈리고 있다. 극우성향의 민족행동당(MHP)는 친EU 성향 개혁에 반대하며 중도우파인 ANAP에 맞서고 있다. 이스탄불 빌기 대학의 정치학자인 일터 투란은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없는 상황에 스스로를 가둬두고 있다.유일한 정부의 관심은 권력을 유지하는데 있다"면서 "주요 정책 분야에서는 아무것도 일어날 수없는 지경이지만, 그런 속에서 이제 새로운 기회가 변화를 가져오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앙카라 AP.AFP=연합뉴스) lwt@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