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26일 대국민연설에서 `이젠사라져야 할 인물'로 지목한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에게 무슨위안이 될까만 아라파트는 미국이 제거하려고 마음먹은 최초의 외국 국가원수가 아니다. 아라파트의 경우는 그래도 "평화는 새로운 지도부를 요구한다"는 점잖은 퇴장 경고를 받았지만 다른 많은 외국 지도자들은 미국의 암살과 침공, 비밀작전 등을 통해 무자비하게 제거됐다. 미국이 과거 외국 지도자들을 제거할 때의 상황과 국제여론은 때마다 달라 그 양상도 다양하기 그지없다. 지난해 아프가니스탄에서의 대테러전쟁으로 집권 탈레반이 쫓겨날 때 미국은 무력사용에 대해 `광범위한 국제적 지지'라는 호사까지 누렸지만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에 대해서는 부시 대통령이 아무리 무력을 사용하고 싶어도 국제적 지지가 거의없어 섣불리 무기를 들 수가 없는 상황이다. 유럽 국가들은 과거 여러 차례 미국의 편을 들었지만 이라크에 대한 무력사용은 법적 근거가 없다며 반대하고 있고 평화의 조건으로 아라파트 제거를 내세우는 부시의 의견에도 거의 동조하지 않는다. 미국의 역대 대통령이 마음놓고 지도자들을 갈아치운 지역은 중남미와 카리브해 국가들. 대표적인 예가 쿠바로, 미국 상원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 1975년 한 해동안 미중앙정보국(CIA)은 피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을 일곱 차례나 암살하려고 기도했다. 카스트로는 이보다 더 많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로부터 한 세대가 지난 후카스트로는 여전히 건재하며 현재 미국의 정책은 카스트로를 밀어붙여 민주주의와 자유시장으로 전환하도록 한다는 쪽으로 바뀌어 있다. 카스트로는 미국의 축출 대상 1호이지만 지난 1961년 피그만 사건 당시에는 미국에서 훈련받은 망명세력을 손쉽게 제거해 미국을 망신시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빌 클린턴 대통령은 지난 1994년 아이티에 군대를 파견, 3년 전 합법적으로 선출된 대통령으로부터 권력을 찬탈한 군부세력을 도태시켰다. 이 계획은 유엔 안보리의 사전승인을 받았기 때문에 국제적인 항의는 별로 없었다. 41대 부시대통령은 지난 1989년 파나마에 병력을 상륙시켜 미국에서 마약거래혐의로 수배된 반민주 지도자 마누엘 안토니오 노리에가 장군을 체포했다. 많은 중남미 국가들이 미국의 이같은 행동에 분개했지만 미국은 노리에가가 없는 파나마는 그 후 12년동안 민주적인 안정을 누리고 있다고 반박하고 있다. 로널드 레이건 정부는 니카라과 반군을 부추겨 친(親)쿠바 산디니스타 세력의 지도자 다니엘 오르테가를 몰아내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니카라과 유권자들이 지난 90년 온건지도자를 선출해 자율성을 과시했다. 그라나다 좌파 정부는 지난 83년 미군의 개입으로 전복됐다. 그로부터 3년 뒤 미국은 전투기를 동원해 리비아를 공격했다. 이 작전의 목표는 지도자 무아마르 카다피를 제거하려는 것이었지만 카다피는 목숨을 건져 지금은 과거보다 훨씬 고분고분해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보다 훨씬 전에도 미국은 두 차례 외국 정권을 바꿔놓은 사례가 있다. 지난 53년에는 이란, 54년에는 과테말라에서 CIA가 배후조종하는 쿠데타를 일으켜 친미정부를 들여놓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볼 때 이란 내정 개입은 미국에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왔다.국내 지지기반이 취약한 친미정부는 지난 79년 이슬람 혁명으로 무너졌고 강경 이슬람 정부는 지금까지 건재하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이란을 `악의 축'으로 지목했지만 새 지도부를 요구하지는 않았다. 이것은 이란 국민의 몫으로 남겨놓은 것이다. (워싱턴 AP=연합뉴스) youngni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