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테러참사 당시 뉴욕의 세계무역센터(WTC)의 북쪽 건물87층에서 일하던 애덤 메이블럼(36)은 건물 붕괴 직전 가까스로 빠져나와 목숨을 건지고 나서 곧 바로 자신의 심경을 담은 e-메일을 가족과 친구들에게 보냈다. 화염에 휩싸인 건물에서 구사일생으로 탈출에 성공한 자신의 이야기를 25명의친지들에게 보낸 지 하루도 채 못돼 메이블럼은 e-메일 답장을 약 100통 가량이나받았다. 이 가운데 대부분은 자신이 전혀 알지 못하는 인물로 부터 온 것이었다. 메이블럼은 지금도 계속해서 낯모르는 사람들로부터 e-메일 답장을 받고 있으며지금까지 받은 답장은 1천통이 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에서 살고 있는 한 여성은 "당신은 나를 모르겠지만, 내 사위가 당신의 e-메일 내용을 전해줬습니다. 우리 사위한테 누가 이런 메일을 발송했는지는모르지만, 당신이 나를 얼마나 행복하게 해줬는지 반드시 알도록 해야겠다는 느낌이들었습니다. 당신이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얘기는 내 가슴속에 있던 무거운 짐을덜어줬습니다"라는 내용의 메일을 보내왔다. 투자회사인 메이 데이비스 그룹의 직원이었던 메이블럼은 9.11테러 발생 다음날뉴욕주(州) 뉴 러셸 근교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컴퓨터 앞에 앉아 `우리가 치르는대가'라는 제목의 e-메일을 쓰면서 몇시간을 보냈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글로 정리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안전하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메일을 띄웠다. 그는 당시 상황을 묘사하면서 "우리는 매우 질서정연하게 계단을 내려왔다. 매우 천천히, 아무런 동요없이, 적어도 겉으로는 아무런 동요가 없었다. 내 다리가 후들거리는 것을 멈출 수 없었으며 심장은 요동치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긴장한 가운데서도 농담을 주고 받으며 웃음을 잃지 않았다"고 메일에 적었다. 당시 그는 휴대폰으로 부모와 형수 등과 통화를 가졌다. 아내와도 통화를 시도했으나 아내가 아이를 데리고 정기건강검진을 하러 있었기 때문에 통화가 이뤄지지는 못했다. 그는 두번째 피랍 여객기가 WTC 남쪽 건물에 충돌하는 소리를 듣지도 못했다. 44층에 도착했을 때 그는 소방대원들과 경찰관, 그리고 구조대원 등이 층계를올라오는 광경을 목격했다. 메이블럼은 그들에게 97층 뒷편에 남아 있던 친구 한명과 53층에서 쉬고 있는덩치 큰 한 남자에 관해 이야기했다. 그는 그러나 "나중에서야 무서운 느낌이 들었다. 구조요원들이 생명을 구하러 올라갔으나 대신 죽음을 맞은 셈이었다"고 메일에썼다. 그의 메일은 플로리다와 캘리포니아, 코네티컷, 뉴저지 등에 살고 있는 가족과처가쪽 식구들, 그리고 몇몇 친구들에게 보내졌다. 그러나 24시간이 못돼서 뉴질랜드에서도 답장이 왔으며 필리핀의 산타 바르바라에서 엽서가 날아오기도 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한 증권회사로부터도 편지가 오는 등 지금도 그의 사연을 읽고 감동을 받은 사람들로부터 우편물이 답지하고 있다.그의 메일 내용은 몇몇 웹사이트에 게재됐다. 메이블럼은 자신의 메일이 이처럼 큰 반향을 일으킨 배경에 대해 "WTC 건물 밖에서 당시 상황을 지켜보던 사람들이 나의 메일을 통해 같은 시각 건물안에서 무슨일이 벌어지고 있었는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어떤 사람은 메이블럼의 글을 읽으면서 눈물을 흘렸다고 말했으며 많은 사람은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참사가 벌어진 현장을 들여다 볼 수 있게 해준데 대해 감사의뜻을 전해왔다. 볼티모어에 사는 한 여성은 "당신의 글은 우리에게 마음의 평정과 함께 동지애,그리고 공포를 가져다 주었다"면서 "당신을 포함해 당신과 함께 평정을 잃지 않고차분하게 건물을 빠져나옴으로써 여러 생명을 구한 사람들은 훈장을 받을 만 하다"고 추켜세웠다. 메이블럼은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영웅'이라고 부르는 것에 손을 내저으면서 "모든 위험에 맞서 생명을 구하러 건물 계단을 걸어올라갔던 사람들이 영웅"이라고 강조했다. (뉴욕 AP=연합뉴스) shpar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