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러시아에 감사의 절을 해야 한다. 특히 석유수입국들은 고마움의 선물도 보내야 한다. 최근 국제유가가 급락,고유가에 대한 걱정이 사라진 것은 대부분 러시아 덕이다. 두어달전만 해도 배럴당 30달러가 넘던 유가는 지금 18달러 근처에 있다. 하루 산유량을 20만배럴 줄이라는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요구에 의연히 맞서는 '국제석유시장의 백기사' 러시아가 있기에 세계는 저유가의 꿀맛을 보고 있다. 말을 듣지 않으면 유가 인하전도 불사하겠다는 OPEC의 협박에도 러시아의 태도는 의연하다. OPEC의 체면을 생각해서 5만배럴까지는 줄일 수 있지만 그 이상은 안된다는 이 백기사에게 박수를 보내야 한다. 러시아는 하루 산유량이 6백90만배럴로 세계 2위 산유국이다. 1위는 사우디아라비아(7백70만배럴). 하루 산유량이 3백30만배럴 안팎인 노르웨이와 멕시코가 OPEC의 감산요청을 수용,10만배럴씩 줄이기로 한 것에 비하면 러시아의 5만배럴 감산은 체면치레일 뿐이다. OPEC의 위협대로 유가인하전이 벌어지면 러시아가 더 손해다. 유가가 10달러 밑으로 내려가도 OPEC의 핵심멤버들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 쿠웨이트 등 중동 산유국들의 채산성은 높다. 이들의 원유 생산비는 배럴당 1달러 정도에 불과하다. 이에반해 러시아 등 비OPEC국가들의 생산비는 6~8달러에 이른다. 이런 사정인 데도 러시아가 감산에 소극적인 것은 석유업체들이 모두 민영화된 까닭이다. 과거 국영시절과는 달리 러시아 정부는 석유회사들에 대해 산유량을 줄이라고 함부로 지시할 수 없다. 석유회사들은 유가하락을 감수하고라도 시장을 지키겠다는 생각으로 대량감산을 거부하고 있다. 러시아 경제사정이 좋은 것도 러시아가 석유시장의 백기사가 된 배경중 하나다. 올해 러시아 경제성장률 예상치는 5.5%.세계적인 불황을 감안할때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유가가 떨어져 원유수출수입이 줄더라도 활발한 내수가 석유회사들을 받쳐줄 수 있는 성장률이다. 러시아는 지난 90년대 내내 세계경제의 불안 요인이었다. 지금은 그러나 석유시장의 백기사로서 세계 경제의 안전판으로 환골탈태했다. lee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