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대규모 침공작전으로 진행하지 않고 장기전을 벌이기로 했다. 도널드 럼즈펠드 미국 국방장관은 25일 "대대적인 침공작전을 벌이지 않고 그 대신 어렵고 위험한 장기전을 수행하기 위한 태세를 갖추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세계 2차대전 당시의 프랑스 노르망디 상륙작전 때와 같은 '작전개시일(D 데이)'은 없다"고 말했다. 이같은 발언은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최근 대국민연설을 통해 "TV에서도 볼 수 없는 전쟁이 있을 것"이라고 언급한 것처럼 외교단절 및 돈 줄 차단과 같은 비군사작전이 이번 '21세기 첫 전쟁'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을 거듭 확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아프간에 대한 대대적인 침공작전으로 테러를 뿌리 뽑을 수 있다는 기대를 하지 말라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럼즈펠드 장관도 "테러리스트들이 음지에서 살며 전세계에 퍼져 있다"고 지적했다. 화풀이성 공습보다는 테러가 국제사회에 발을 디디지 못하게 하겠다는 의지를 재차 표명한 것이다. 하지만 대규모 병력을 아프간 주변에 집결시키면서까지 공습 자체를 감행하지 않을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날 미 정부 관계자들의 말과 군사배치 등을 토대로 "미국의 공격은 밤중에 아프간의 수도 카불과 칸다하르에 대한 폭격으로 시작될 것"이라는 개전 시나리오를 보도했다. 이 공격은 '항구적 자유' 작전에서 가장 큰 규모로 전개될 것이지만 걸프전과 같은 장관은 연출되지 않을 것이라고 이 신문은 전망했다. 그런 맥락에서 대규모 침공작전으로 보지 않을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이 신문은 미국이 기습폭격으로 탈레반의 전력을 약화 시킨 뒤에 특수부대를 투입해 빈 라덴을 체포하는 전략을 구사할 것으로 보도했다. 미국은 장기전 태세에 돌입함과 함께 화전(和戰)양면 작전을 구사하면서 탈레반을 압박해들어가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이날 "우리는 (아프간에) 국가건설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밝혀 탈레반 정권의 전복을 모색하지 않음을 시사했다.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도 "탈레반이 오사마 빈 라덴을 인도하고 그 테러조직 알카에다를 해체한다면 서방의 원조도 받게 될지 모른다"고 말했다. 탈레반을 고립무원의 상황으로 몰아가고 있는 미국이 한편으로는 화해의 제스처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 등이 탈레반과의 외교관계를 단절시키도록 외교전을 펼치고 탈레반의 주수입원인 마약사업 등을 겨냥한 금융전쟁에 돌입한 상태다. 미국이 탈레반과 교전중인 아프간 반군세력인 북부동맹과의 관계 설정을 아직 명확히 하지 않고 있는 것이 이같은 양면작전을 구사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있다. 북부동맹은 미국이 공격을 개시할 때 수도 카불을 공격,점령할 계획이라고 대외적으로 발표하는 등 미국과의 연합전선 구축을 적극 희망하고 있다. 한편 미국은 아프간 공습이 임박한 가운데 자국 내 원자력발전소의 안전조치를 강화하는 등 보안 강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오광진 기자 kj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