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20일 걸프지역으로 전함과 군용기 등의 이동배치에 나섬으로써 테러 응징을 위한 전쟁 준비를 본격화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아프가니스탄의 이슬람 성직자들이 20일 재개된 회의에서 미국 본토 테러공격의 배후세력으로 지목되는 오사마 빈 라덴의 자진출국을 결의함으로써 미국과 아프간 양측의 대치국면이 새로운 전기를 맞을 것으로 보인다. 미 국방부는 대(對)테러 전쟁 수행을 위해 '무한 정의 작전'(Operation Infinite Justice)이란 작전명 아래 본토의 전투기와 전폭기 등을 걸프지역으로 이동하도록 명령, 테러 보복전쟁을 위한 구체적인 군사조치를 취하는 한편 아프간측에 대한 압박의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미국은 또 개전시 테러집단이 후속테러를 자행할 가능성이 크다는 판단 아래 사상 처음으로 수도 워싱턴을 비롯, 뉴욕 등 대도시 상공에 전투기 초계비행을 실시하는 등 자국 영토에 대한 테러방어전선 구축에 나섰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이날 저녁 의회연설을 통해 대테러 전쟁의 장기화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국민의 인내를 호소할 계획이지만 전쟁선포나 군사작전의 개시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기로 해, 정확한 개전 시점에 관해 섣부른 예측이 어려운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파키스탄과 인도네시아가 대미협력을 다짐했으며 독일도 미 보복전쟁 지원을 결의하는 등 국제사회의 지지를 얻기 위한 미국의 노력도 결실을 보고 있다. ◆ 개전을 향한 미국의 움직임 = 미 항공모함 시어도어 루스벨트호가 해병대 병력 2천명과 순양함, 구축함, 잠수함 등을 포함한 14척의 항모전단을 이끌고 19일 미버지니아 노퍽 기지를 출항, 지중해로 향했으며 이밖에 2척의 항공모함이 호위 선단과 함께 이미 걸프지역에 배치됐다고 해군 관계자들이 밝혔다. 20일에는 토마호크 크루즈미사일로 무장한 미 구축함 커싱호(號)가 일본 요코스카항을 출항했으며, 커싱호는 21일 일본 기지를 출항 예정인 항공모함 키티호크호와 합류, 인도양으로 향할 것으로 보인다고 교도통신이 보도했다. 국방부는 그러나 병력배치가 진행되고 있음을 확인했으나 구체적인 사항은 공개하지 않았다. 또 100대가 넘는 군용기가 걸프지역에 배치됐다는 CNN방송 보도에 대해서도 논평을 거부했다. 그러나 폴 월포위츠 국방부 부장관은 대테러 작전 지원을 위해 미군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면서 "앞으로 더 많은 이동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해 군사적 움직임이 본격화됐음을 내비쳤다. 국방부의 한 고위관리도 F-16 및 F-15 전투기와 B-1B 폭격기 등 수십대의 군용기의 걸프지역 배치를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미국은 개전을 위한 준비와 함께 개전시 예상되는 추가테러를 차단하기 위해 30개 주요 도시에 대한 방공전투망을 구축하고 화생방전에 대비한 대도시 방어경계망을 가동하는 등 전국에 비상경계태세 5단계 중 두번째로 높은 '챨리' 경계령을 발동했으며 워싱턴과 뉴욕 상공에 대한 전투기 정찰비행도 시작했다. 이에 앞서 애리 플라이셔 백악관 대변인은 탈레반 지도자 모하메드 오마르가 협상 용의를 밝혔다는 보도에 대해 "대통령의 메시지는 매우 단순하다"며 "지금은 협상이 아니라 행동할 때"라고 못박았다. 그러나 월스트리트 저널은 미 관리들의 말을 인용, 이라크가 이번 테러에 모종의 역할을 담당했을 수 있다는 이라크 배후설이 급부상하고 있으나 이를 믿는 관리는 없다고 말해, 이라크도 공격대상에 포함될 것이란 일각의 관측을 부인했다. ◆ 부시 대통령 의회 연설 =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20일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연설을 통해 테러범 응징위한 부단한 전쟁을 수행하는데 있어서 국민들의 인내와 합리적 이성을 호소할 예정이다. 부시 대통령은 그러나 이번 연설에서 전쟁의 선포나 군사적 공격을 발표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부시 대통령이 연설을 통해 '특정한 군사 보복공격'에 대해 발표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시 대통령은 대신 테러범과 범행이유 등에 대해 설명하면서 빈 라덴과 그의 조직인 알 카이다를 직접 거명할 것으로 알려졌다. ◆ 빈 라덴 자진출국 모색하는 탈레반 = 미국이 제시한 빈 라덴의 신병인도 시한이 임박한 가운데 아프간 이슬람 성직자들은 이날 수도 카불에서 빈 라덴의 인도여부에 대해 논의한 끝에 빈 라덴이 자진해서 아프간을 떠나도록 요청키로 했다고 탈레반의 바크타르통신이 보도했다. 이 통신은 성직자들이 빈 라덴에 대해 아프간을 떠나도록 권고하되, 본인의 의사에 따라 자진해서 출국 결정을 내리도록 결정했다고 전했다. 성직자들은 아울러 미국이 공격할 경우, 성전에 나서기로 결의했다. 집권 탈레반측은 성직자회의의 결정을 준수할 것으로 보이지만, 빈 라덴이 아프간을 떠날 것인지 여부는 불투명하다. 앞서 탈레반 최고 지도자 오마르는 성직자회의 개막식?보낸 메시지를 통해 빈라덴의 혐의를 입증할 증거가 없다면 그의 신병을 인도하지 않겠다고 말해 신병인도 불가 방침을 시사한 바 있다. 오마르는 빈 라덴이 테러를 자행할 능력이 없는 상태라는 주장을 재차 하면서 죄가 있다면 빈 라덴을 인도하는 대신 아프간 대법원에 세워 재판받도록 하고 이슬람회의기구(OIC)가 재판과정을 참관하도록 하겠다고 제의하기도 했다. 아프간 국민의 피난행렬이 줄을 잇고 있는 가운데 수도 카불은 통행금지를 밤 9시30분부터 새벽 4시30분까지로 연장, 전시상황에 대비하고 있다. 한편 탈레반에 저항하고 있는 북부연맹의 압둘라 술타니 사령관은 미국이 공격하면 탈레반을 지원할 것이라고 밝혀 미국 지원입장을 번복했으나 진위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 파키스탄의 움직임 = 페르베즈 무샤라프 파키스탄 대통령은 이날 TV를 통해 생중계된 대국민 연설에서 미국의 목표는 이슬람이나 아프간 국민을 목표로 한 것이 아니라면서 파키스탄 국민의 대동단결을 호소했다. 무샤라프 대통령은 "육군총장으로서 나의 첫번째 임무는 파키스탄을 방어하는것"이면서 미국을 비롯한 국제 공동체와 협력해 파키스탄이 "책임있고 당당한" 국가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워싱턴.이슬라마바드=연합뉴스) 신기섭.이기창특파원 lkc@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