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정부가 지난 11일 뉴욕과 워싱턴에서 발생한 테러행위를 "전쟁행위"라고 규정하고 무력 응징을 불사하겠다고 다짐한 가운데 프랑스 일간 르 피가로는 '무력 보복'의 효과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르 피가로는 14일 테러행위에 대한 과거 미국 정부의 `무력 보복'이 한결같이 "거의 효과가 없었다"고 지적하고 미국이 직접 무력을 사용, 응징에 나서더라도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신문은 미국이 수차례에 걸쳐 테러 공격에 대해 군사적으로 대응했으나 "힘든 작전에도 불구하고 성과는 불확실했다"고 설명했다. ▲1979년 11월 4일 호메이니 회교혁명당시 테헤란주재 미대사관은 폭도 3천명에 의해 점거되고 직원 52명이 인질로 잡혔다. 당시 지미 카터 대통령은 인질 구출을 위해 특공대를 파견했다. 헬리콥터 8대, 항공기 12대가 동원되고 특공대원들이 테헤란 시내로 잠입했다. 그러나 이 작전은 실패로 끝났으며 미국인 8명이 사망했다. 인질들은 알제리의중재로 협상끝에 1981년 1월에야 석방됐다. ▲1986년 4월 5일 베를린의 미군 단골 디스코텍 '라벨'에서 폭탄이 터져 2명이 사망했다. 이중 1명은 미군 장교였다. 리비아의 소행인 것으로 밝혀졌으며 당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보복을 지시했다. 4월 15일 영국에서 이륙한 F-111 폭격기 18대가 트리폴리와벵가지를 공격했다. 리비아 국가원수 무아마르 카다피의 거처및 테러 훈련소로 보이는 건물들이 집중적으로 폭격을 당했다. 37명이 사망했으며 이중에는 카다피의 딸도포함됐다. 그러나 이 작전은 리비아의 테러행위를 종식시키지 못했다. 이후 리비아는 1988년 로커비 사건에도 개입됐다. ▲1998년 8월 7일 케냐와 탄자니아 주재 미국대사관이 폭탄공격을 받았다. 263명이 사망했으며 이중 12명이 미국인이었다. 부상자 수도 4천여명에 달했다. 백악관은 오사마 빈 라덴을 주범으로 지목하고 보복에 나섰다. 8월 20일 당시 빌 클린턴 대통령의 명령에 따라 토마호크 순항미사일 75기가 테러 배후기지로 알려진 수단과 아프가니스탄을 향해 발사됐다.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중요한 테러지도자 회의가 열린다는 정보에 따라 테러 훈련소인 코르스트 캠프가, 수단에서는 미중앙정보국(CIA)이 화학무기 제조 공장으로 의심해온 하르툼 소재 알-시파 공장이 각각 폭격당했다. 이 장소들은 모두 파괴됐으나 7명이 부상하는데 그쳤다. 게다가 알-시파 공장은 단순한 제약공장인 것으로 밝혀져 CIA의 신용이 실추됐다. 이같은 공격에도 불구하고 아프가니스탄은 여전히 전세계 테러범들의 은신처가 되고있다. (파리=연합뉴스) 김은주특파원 kej@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