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테러보복이 임박했다. 세계 유일의 슈퍼파워가 테러집단을 상대로 벌이는 전쟁이 국제정치와 경제질서에 어떤 충격을 미칠지 전세계가 긴장하고 있다. 그 파장이 대외변수에 민감한 체질을 가진 한반도 정세와 한국경제에 어떻게 나타날지, 한국은 이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국익을 지키고 경제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을지 분야별 전문가들과 전화인터뷰를 통해 진단해 보았다. --------------------------------------------------------------- [ - 이번 사태가 문명충돌이나 세계전쟁으로 비화될 가능성은. ] 윤영오 국민대 정치대학원장 (미국 정치) =이번 사태를 기독교와 이슬람간 문명충돌로 해석할 수 있는 직접적 근거는 없다. 새뮤얼 헌팅턴이 제기한 문명충돌론은 서구와 중동간 종교 관습 전통의 차이가 불협화음을 야기할 수 있다는 개연성을 지적한 것일 뿐, 그것이 필연적인 충돌로 나타난다는 얘기는 아니다. 지금 사태는 문명적 측면보다는 정치 군사 외교적인 상호관계가 작용했다고 봐야 한다. 따라서 중동국가들이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이번 사태의 귀결이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정부 차원에선 테러를 비난하는 성명서를 내놓고 있지만 일반 국민들은 반미 감정이 높다. 물론 당장 서방과 중동간 대전으로 확산될 가능성은 없다. 그러나 보수 강경노선을 걷고 있는 이스라엘이 돌출 행동을 하는 등 양측의 감정을 건드리는 '악재'가 돌출할 경우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 - 미국의 대응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 홍순남 한국외국어대 아랍어과 교수 (아랍 정치) =이번 사태 초기에 10시간 이상 백악관을 비운 부시 대통령의 행동에 대해 미국 여론이 좋을리 없다. 일단 일치단결하고 있고 미국 언론도 문제를 삼지 않고 있지만 부시대통령으로선 상당한 정치적 부담을 느낄 것이 분명하다. 앞으로 며칠동안 어떤 위기관리능력을 보여주는가에 따라 부시 대통령의 정치적 앞날이 크게 좌우될 것이다. 그동안 부시정부는 국제정치적으로도 너무 일방적인 자세를 취한 나머지 고립되는 모습을 보였다. 따라서 부시정부는 정치적인 계산까지 감안해서 강력한 군사행동으로 나갈 것이 틀림없다. 테러의 배후로 지목받는 빈 라덴에게 은신처를 제공해온 아프가니스탄을 철저하게 응징하는 쪽으로 나타날 것이다. 민간인 피해도 불사할 것이다. 군사행동의 수준은 제한적 공중폭격이나 지상군 투입을 통한 전면전, 양쪽 모두 가능성이 있다. 유장희 이화여대 국제대학원장 (국제경제) =미국의 공격 시나리오는 네가지 정도다. 무차별 공격을 하는 방법에서부터 걸프전에서처럼 다국적군을 형성해서 치고 들어가는 방안 특공대 조직으로 테러세력을 궤멸시키는 방안 외교적 협조를 통해 아프가니스탄 정부로부터 범인을 인도받는 방법 등이다. 오늘날 세계 질서는 다조간 협조체제가 골간이다. 어느 일방이 독주하는 방식은 환영받지 못한다. 영국 러시아 일본 등도 미국의 공격에 동참하겠다는 의사를 보이고있는 만큼 다국적군이 구성될 공산도 크다. [ - 미국은 보복을 통해 소기의 목적을 거둘 수 있을까. ] 김중관 명지대 투자정보대학원 교수 (아랍경제) =이번 테러로 세계 최강국인 미국의 시스템이 의외로 취약하다는 것을 전세계에 보여줬다. 실제로 금융마비와 실물경기 위축으로 심리적 공황에 빠져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부시정부로선 보복을 해야 하는데 반드시 국제사회의 공감을 바탕으로 해야 할 것이다. 국제사회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너무 과격한 조치는 미국을 더욱 고립적인 상황으로 몰고갈 수도 있다. 미국의 보복이 당장은 성공할지 모르지만 너무 지나치면 중장기적으로 아랍권의 단결을 촉진하고 복수심을 더욱 불태우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여기에다 미국이 아랍권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스라엘에 대한 편향적인 지지를 더욱 강화하는 쪽으로 나갈 경우 '이슬람과의 전쟁'으로 확산될 수 도 있다. [ - 아프가니스탄과 아랍 진영은 어떻게 대응할까. ] 홍 교수 =무고한 시민의 피해가 워낙 큰데다 미국의 분노와 보복결의가 워낙 강하다. 이런 상황을 감안할 때 그동안 반미노선을 취해온 리비아 시리아 이집트 팔레스타인 등은 당장은 반미 깃발아래 연대할 가능성이 희박하다.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도 곤혹스러울 것이다. 그렇지만 미국의 보복을 각오하더라도 당장 빈 라덴을 내줄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탈레반은 '학생'이라는 뜻으로 지난 1994년 젊은 학생들을 중심으로 여러군데 산재해 있던 반군세력들을 규합, 출범했다. 이란 호메이니의 회교혁명 같은 이슬람 원리주의를 신봉하는 정권이다. 따라서 이슬람 전사를 자처하는 라덴을 미국에 인도할 능력과 의사가 있는지 여부는 불투명하다. 빈 라덴은 5억달러의 재산과 함께 독자적인 군사뗍汰?갖고 있기 때문에 탈레반이 라덴을 완전 통제하지 못하는 상황일지도 모른다. 김 교수 =아랍은 국가를 뛰어넘어 종교(이슬람)적 정치적으로 일치된 지역이다. 아랍 22개국은 같은 언어를 쓰고 체제 동질성이 강하다. 지금은 힘이 약해서 겉으론 미국에 고개를 숙이지만 바탕에는 서방국가들에 대한 테러를 '성전'(지하드)으로 절대가치를 두고 있다. 중동은 변변한 군사력도 없이 전쟁을 장기화하는데 이골이 난 국가들이 많다. 아프간의 경우 구 소련과의 전쟁 등으로 전쟁이 거의 생활화돼 있는 나라다. 이들은 끝없는 게릴라전을 펴고 최소한의 희생을 치르면서 세계적인 관심을 환기시키는 국제정치적인 노하우와 경험도 갖고 있다. 구 소련도 아프가니스탄을 끝내 굴복시키지 못한데서 미국은 힌트를 얻어야 한다. [ - 세계경제에는 어떤 여파가 나타날까. ] 성극제 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 (국제 경제) =글로벌라이제이션 추세가 다소 둔화될 것으로 보인다. 당장 뉴라운드 출범을 위해 오는 11월29일로 예정돼 있는 카타르 각료회의 개최도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공교롭게도 회의장소가 중동지역이다.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에 오래 매달리고 새로운 무역질서에 신경쓸 겨를이 없을 경우 뉴라운드 출범은 어렵다. 통상정책도 쌍방의 시장개방 촉진보다는 무역장벽을 강화하는 보수적인 성향을 띌 공산이 크다. 원래 통상마찰은 경기가 좋지 않을 때 심해지는 속성을 갖고 있다. 요즘 경쟁력이 약화된 미국 기업들이 정부에 무역규제를 하소연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달러화 가치 하락은 당분간 불가피해 보인다. 만약 사태가 급박하게 치달을 경우 급락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는 자본이 미국을 떠나 다른 안전지대를 찾는 가능성도 있다는 얘기인데 문제는 유럽 중국 일본 등이 흡수할 준비나 여력이 없다는 점이다. 미국은 보복을 하더라도 그간 자국이 주도해온 국제경제의 파국을 원치 않기 때문에 아랍진영과 전면적인 보복전을 치르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철저하게 응징한다고는 하지만 민간인 문제나 주변국과의 관계 등을 고려할 때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유 원장 =이번 사태가 세계경제에 주는 충격은 예상밖으로 크지 않을 것이다. 서방선진 7개국(G7)이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확고한 공조체제를 구축했고 실물부문도 어차피 경기가 하락하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추가 타격이 엄청나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이번 사태로 경기저점이 앞당겨질 수도 있겠다. [ - 한반도 정세에는 어떤 영향이 미칠까. ] 홍 교수 =미국으로부터 테러위험국으로 간주돼 있는 북한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북한이 테러위험국이 아니라는 사실이 완전히 검증될 때까지 북.미관계는 개선될 가능성이 낮아 보인다. 우리 정부의 햇볕정책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공산이 크다. 윤 원장 =미국은 중국이나 북한에 대해 우호적인 정책을 구사할 가능성도 있다. 중동과 갈등을 빚고 있는 만큼 아시아에 또 다른 적대세력을 만들 필요가 없다. 또 장거리 미사일을 중심으로 짜여져 있는 미국의 방위시스템도 내부 방어를 강화하는 쪽으로 중심축이 옮겨갈 것이기 때문에 중국이나 북한을 바라보는 시각도 달라질 가능성이 높다. [ - 한국 경제에 미칠 영향과 대응 태세는. ] 김 교수 =만약 중동에 전쟁이 발발할 경우 우리나라는 석유 등 원자재 수급문제 악화에 대비해야 한다. 특히 석유문제는 아랍 산유국들이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에 따라 국내 경제에 큰 타격을 줄 수도 있다. 테러 같은 위기는 예고없이 찾아오기 때문에 내수 부문을 보다 확충해서 외부충격 변수를 줄여야 할 것이다. 에너지 수급은 2차대전 이후 미국이 좌지우지해 왔는데 이번 사태가 의외로 장기화되고 확전될 경우 중동산유국에 대한 미국의 통제력이 급격하게 약화되는 상황도 우리는 상정해 봐야 한다. 유 원장 =부시집권 이후 미국의 무역적자가 계속 늘고 있는 것이 우리로선 부담스럽다. 올해 미국의 무역적자는 무려 3천8백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우자동차 매각이나 현대투신 하이닉스 처리 등 미국기업이나 투자자들과 관련이 있는 경제현안들도 영향을 받을 것이다. 우리 정부는 총수요가 위축되지 않는 정책을 펴는게 좋겠다. 수출이 죽을 쑤고 있는 상황에서 총수요가 받쳐 주지 못하면 경기가 급속히 위축될 수도 있다. 박태호 서울대 대외협력본부장 (국제통상) =이번 사태를 계기로 한국은 세계적으로 가장 안전하면서 건전한 비즈니스 환경을 갖추는데 전력투구해야 한다. 미국조차 안전하지 않다는 것이 실증된 이상 세계의 자금들은 안심할 투자처와 비즈니스 할 곳을 찾을 것이 뻔하다. 이런 상황에 잘 대응해야 한다. 외환위기 이후 외국인 자금이 많이 들어오긴 했지만 절대 규모로는 미흡한 실정이다. 한국은 아직 비즈니스 하기엔 좋다는 평을 받지 못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사태를 비관적으로 예단할게 아니라 미국 일본 중국 등 경제대국과의 긴밀한 공조체제를 바탕으로 경제의 글로벌화를 지속적으로 일관되게 추진해 나가야 한다. 중국 일본 동남아시아와의 경제블록구축 협력에도 나서는 한편 세계경제의 국제화 흐름에도 동시에 편승해야 한다는 얘기다. 특히 중국 경제구조가 보다 선진화돼 더 많은 국제자본을 빨아들이기 이전에 우리가 최대한 외국기업을 유치함으로써 아시아 경제권의 일각을 당당히 차지한다는 전략이 중요하다. 조일훈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