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명이 매몰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 뉴욕 세계무역센터(WTC) 쌍둥이 건물에 대한 피랍기 자살충돌을 막을 방법은 전혀 없었을까. 항공보안 전문가들은 공중납치는 어쩔 수 없다손 치더라도 F-16 전투기가 제때 출격했더라면 충돌 직전 여객기를 격추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물론 무고한 승무원과 탑승객의 희생을 전제로 했다는 비난을 면키 어렵겠으나 더 큰 희생을 줄인다는 차원에서 격추도 대안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미 NBC 방송은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 F-16 전투기가 정상항로를 이탈한 아메리칸항공 소속 여객기에 근접, 지시를 따르지 않을 경우 바다나 다른 공항으로 강제로 유도하고 최악의 경우 격추할 수 있다고 전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지난 99년 10월 미 프로골퍼 페인 스튜어트(당시 42) 탑승한 경비행기가 항로를 이탈했을 때도 F-16기가 출격했으며 만일 이 경비행기가 인구밀집지역으로 추락할 가능성이 있었다면 격추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통상 조종사들은 이륙전 받게 되는 항로결정서(SID)에 따라 비행하도록 돼 있으며 정해진 고도에서 90m, 정해진 항로에서 1.6㎞ 이내를 벗어날 경우 지상관제탑으로 이탈했다는 경고를 받게 된다. 연방항공청(FAA) 보스턴 센터는 보스턴발 로스앤젤레스행 아메리칸항공 11편 여객기가 이륙한지 얼마안돼 뉴욕주 올버니 인근 상공에서 정상궤도로부터 남쪽으로 100도(약 21.3m) 왼쪽으로 이탈한 것을 알았다. 또 지상관제요원들은 조종실 마이크로폰을 통해 "바보같은 짓을 하지 말라, 너희들은 다치지 않을 것"이라고 흘러나오는 대화 내용을 엿들었던 것으로 크리스천사이언스 모니터지는 전했다. 시간상으로 올버니 상공에서 WTC까진 고속으로 비행할 경우 24분이 소요된다. WTC에서 가장 가까운 F-16 기지는 뉴저지주 애틀랜틱 시티로 WTC까지 18분이면 갈 수있다. 이는 출격해서 격추할 때까지 6분이라는 시간적 여유가 있음을 말해준다. 보스턴발 LA행 유나이티드항공 175편도 WTC를 향해 북쪽으로 기수를 돌리기전 4분간 애틀랜틱 시티 상공을 4분정도 비행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왜 애틀랜틱 시티 전투기들이 대응하지 못했을까라는 의문이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애틀랜틱 시티 기지가 주방위군 소속이기 때문에 연방 공군처럼 전투기가 비상대기하지 않았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애틀랜틱 시티에서 가장 근접한 공군기지는 매사추세츠주 케이프 코드의 오티스 공군기지로 F-15기 2대가 발진했으나 WTC에 도달할 수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공군과 FAA 수사관들은 어떤 전투기도 자살테러 피랍기를 격추시키지 못한 이유를 찾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전문가들은 항공기의 자동무선 레이더가 꺼져 관제요원들이 스크린을 통해 피랍기의 상태를 파악할 수 없었던 것으로 보고 있으나 뉴욕주 롬의 한 공군시설은 기체표면에서 나오는 레이더 반사를 추적했기 때문에 속수무책이었던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한편 전문가들은 테러범들이 올버니에서 항로를 이탈, 뉴욕시 허드슨강을 택한 것은 조종기술이 미숙한 사람도 쉽게 비행기를 조정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으로 허드슨강 상공을 그대로 직진하면 WTC로 갈 수 있다고 밝혔다. WTC에 충돌한 보잉 767기와 같은 첨단 항공기를 조종하려면 고도의 숙련된 조종사가 필요하지만 일단 WTC가 시야에 들어온 상태에선 간단한 조종훈련만 받아도 목표물을 향해 돌진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항공 전문가들은 누구든지 약 4천달러만 주면 사설비행훈련학교에서 기초 조종술을 배울 수 있다고 말했다. 배리 시프 항공안전 컨설턴트는 일단 비행기가 공중에서 항로를 이탈했다면 "보통 수준의 민간 조종사도 쉽게 비행기를 미사일처럼 건물에 부딪치게 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항공안전전문지 '제인스 트랜스포테이션' 편집장인 크리스 예이츠는 "테러범들이 조종사들로 하여금 WTC를 향해 비행할 수 있게 자동비행상태를 명령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ABC 방송은 WTC와 국방부 청사에 충돌한 피랍기들이 더욱 안전하게 비행할 수 있도록 첨단시스템을 갖췄으나 기내에 잠입한 무장 테러리스트들의 공격 앞에선 무방비 상태라며 공항 검색 등 이륙전 보안을 강화하고 갈수록 교묘해지고 암호화하는 테러조직의 교신을 탐지할 수 있게 감청력을 높여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스라엘의 엘 알 항공은 조종석과 객석 사이에 이중문을 설치하고 무장경호원을 상설배치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공항 보안요원들의 저임금 및 열악한 근무조건 등으로 인한 높은 이직률로 보안에 허점이 있다며 근본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로스앤젤레스=연합뉴스) 권오연 특파원 coowon@ao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