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가 미국 경제만 바라보고 있다. 미국 경제가 기운을 차려야 세계 경제도 살아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미국에 세계는 강한 달러정책을 포기하라고 요구한다. 이유는 이렇다. 달러값이 비싸니(달러가 강하니) 유로나 엔 등 다른 통화가치는 상대적으로 싸졌다. 이 때문에 유럽 등 다른 나라들은 수입물가 상승에 따른 인플레 우려로 금리인하같은 경기부양책을 마음대로 못쓰고 있다는 지적이다. 또 미국은 미국대로 '수출경쟁력 약화-무역적자확대-경제회복지연'이라는 강한 달러의 부작용을 면키 어렵다는 것이다. 맞는 얘기다. 그러나 지금은 강한 달러를 포기할 때가 아니다. 경기가 침체하는 상황에서의 달러약세 정책은 미국경제를 더 나쁘게 만들 가능성이 높다. 미국 경제의 주춧돌은 월가 금융시장이다. 월가가 무너지면 미국 경제 전체가 쓰러진다. 월가는 외국 자본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연간 3천억달러가 넘는 경상수지적자는 미국 주식과 채권을 사기 위해 월가로 들어 오는 외국자금에 의해 채워진다. 부시 행정부가 강한 달러를 포기할 경우 그 역효과는 예측되고도 남는다. 당장 외자유입이 줄어든다. 동시에 월가에 들어와 있는 외자도 빠져 나갈 게 분명하다. 달러값이 떨어질 게 뻔한데 어떤 외국 투자자가 자국 통화를 달러로 바꿔 미국 증시에 들어가려 할까. 또 달러가치가 하락하는 상황에서는 기존 투자자들도 손실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미주식과 채권을 처분,월가에서 떠나려 할 것이다. 이 경우 미국 주가와 채권값은 무서운 속도로 떨어진다. 그리고 그 대가는 '월가 금융시장 붕괴-미국경제 파탄-세계 경제 대불황'이다. 미국 경제가 연간 4% 이상 고성장할 때는 차라리 약한 달러정책을 써도 괜찮다. 경기가 좋은 덕에 달러가 약세라도 월가 금융시장은 별 타격을 입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처럼 성장률이 제로에 가까운 때는 '경제력과 통화가치는 비례한다'는 이론과는 달리 강한 달러정책을 써야 한다. 이 점에서 강한 달러정책을 고수하려는 폴 오닐 미 재무장관의 판단은 옳다. lee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