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12일부터 16일까지 5일 동안 스페인, 벨기에, 스웨덴, 폴란드, 슬로베니아 등 유럽 5개국을 순방한다. 이번 방문은 부시 대통령 취임 이후 첫 유럽 방문이라는 점에서, 미국 새 정부출범 이후 양측이 적지않은 현안에서 갈등과 이견을 노출해왔다는 점에서 그 추이가 주목된다. 국제정치를 움직이는 두 축인 미국과 유럽의 정상이 상견례격인 이번 만남을 통해 미사일방어(MD) 체제, 교토기후협약, 대 북한 및 이라크 정책,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확대 등 굵직굵직한 현안들에 대한 입장차를 좁힐 수 있을 지에 국제사회의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과 마찬가지로 유럽에도 이번 정상회담의 결과를 낙관하는 관측은 많지 않다. 그만큼 국제 현안에 대한 유럽과 미국의 시각 차가 클 뿐 아니라 부시대통령과 유럽연합(EU) 정상 사이에 불신에 가까우리만큼 정치적 공감대와 유대가 형성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은 미국의 MD 추진, 교토기후협약 파기 선언, 대북 강경책, 수입제한조치(세이프가드) 발동에 앞선 철강산업 수입피해실태 조사 등이 지나치게 일방적인 자국우선주의라고 보고 있다. 이 때문에 유럽은 부시 대통령의 순방에 앞선 콜린 파월 국무장관,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 등 최고위급들의 MD '세일'에도 불구하고 MD 지지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유럽연합(EU)은 미국이 일방적 탈퇴를 선언함으로써 지구온난화를 방지하기 위한 국제사회의 오랜 노력에 '사형선고'를 내린 데 대해 협약을 구하기 위해 "투쟁하겠다"고 선언해놓은 상황이다. 유럽은 강경일변도로 흐르고 있는 미국의 대북 정책에 대해서도 지난해 남북정상회담 이후 형성된 한반도긴장완화 분위기를 지속시키는 데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처럼 국제현안에 대한 유럽과 미국의 시각차는 중도좌파가 대부분인 서유럽 정상들과 미 서부 부유한 가정 출신의 보수적 부시 대통령 사이의 개인적 정치 성향 차이와 비교할 때 오히려 크지 않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그만큼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과 유럽 중도좌파 정상이 형성했던 개인적, 이념적 유대는 부시 대통령에게서 기대하기 어렵게 됐고 이는 양측이 까다로운 국제현안을 풀어가는 데 있어 만만찮은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일례로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와 클린턴 전 대통령이 가졌던 개인적인 유대는 '사촌지간'으로 불리는 영미 지도자 사이에서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렵게 됐으며 유럽정치 지도자들은 국제외교에 대한 부시 대통령의 무지와 무례를 은근히 비아냥대는 모습이다. 실제로 부시 대통령이 취임한지 5개월여가 지났으나 미국과 유럽은 주요 현안을 해결하거나 입장차를 좁히기는 커녕 더 큰 시각차를 노정하고 있다. 또 부시대통령은 이번 순방기간 중 전통적 우방인 영국이나 유럽 강대국인 프랑스, 독일을 방문하지 않고 EU 중위국쯤 되는 스페인을 방문할 예정이다. 좌파가 집권하고 있는 영국, 프랑스, 독일 대신 중도 우파 정권인 스페인을 방문하는 것은 미국 현정권과 유럽 좌파정권 간의 거리감을 반영하는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낳고 있다. 유럽과 미국 정상들이 상견례격인 이번 만남에서 국제현안에 관해서든, 정치적 성향에 관해서든 원색적인 갈등을 표출할 것으로 보는 이는 많지 않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은 MD, 기후협약 등과 관련해 유럽의 비판적 여론에도 불구하고 국익우선 입장을 분명히할 것으로 보이며 유럽은 이를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그렇기 때문에 유럽-미 첫 정상회담장의 화기애애한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막후 교섭 및 절충 과정에서 상당한 긴장이 형성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브뤼셀=연합뉴스) 현경숙 특파원 ks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