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경기가 전반적으로 둔화되고 있는 가운데 유럽통화동맹(EMU)이 정착기조를 굳히면서 유럽 경제 및 금융권에 지각변동이 일고 있다.

특히 2002년 3월 유로화 공식 도입을 앞두고 금융시장이 유로랜드를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되는 모습을 보여 주목을 끌고 있다.

이에 따라 오는 6월7일 총선을 앞두고 있는 영국을 비롯한 유로랜드 역외국들의 고민이 커지고 있다.

지역주의 움직임은 날로 강화되는 추세인 반면 세계 어느 지역블록에도 참여하지 않고 있는 한국의 입장에서도 최근 영국 등이 겪고 있는 고충이 남의 일만은 아닌 것 같다.

◇ 유럽경제권 재편 가속화 =올들어 유로랜드 경제는 전반적으로 둔화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나 아직 미국 일본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견실한 성장세가 이어지고 있다.

주요 예측기관들은 지난해 3.4%의 높은 성장률을 기록한 유로랜드가 최근의 침체세를 반영, 올해의 경우 성장세가 2.5∼3% 정도로 둔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그렇더라도 이는 올해 예상되는 미국경제 2∼2.5%, 일본경제 0.5∼1%의 성장률보다 높은 수준이다.

반면 영국경제는 올해 1.4분기 성장률이 지난해 4.4분기 대비 0.3%로 당초 예상보다 크게 둔화된 것으로 추정됐다.

이번 총선에서 세금감면과 재정지출을 통한 경기부양책 추진여부가 선거쟁점화되고 있는 것도 이런 연유다.

영국경제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스웨덴, 덴마크의 경제사정도 비슷한 경로를 겪고 있다.

◇ 런던 금융시장의 위상약화 =EMU가 정착됨에 따라 그동안 뉴욕 금융시장과 함께 양대 중심역할을 담당해온 런던 금융시장의 위상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벌써부터 런던이 유로랜드의 역외금융시장으로 전락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낳을 정도다.

실제로 런던 금융시장의 기능 가운데 채권은 독일 프랑크푸르트 시장으로, 주식은 프랑스 파리 시장으로 옮겨지고 있는 상태다.

OECD보고서(Financial Market Trend)에 따르면 국제기채(起債) 시장에서 파리와 프랑크푸르트를 통해 조달한 자금비중이 EMU 출범 이전보다 약 10%포인트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국제자금 조달시 기준금리였던 리보금리(런던 시중은행간 금리)의 위상도 흔들리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유로랜드내 시중은행간 금리인 유리보와 미 재무부 증권의 수익률을 기준으로 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 경제.금융권 재편의 배경 =무엇보다 EMU 출범 당시 예상했던 수준보다 유로랜드가 자급자족적(Autarky)인 성격을 강하게 나타내면서 이같은 유럽 경제 및 금융시장의 지각변동을 가속화시키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다시 말해 유로랜드가 정착되면서 무역창출 효과보다는 무역전환 효과가 크게 나타남에 따라 영국 등 역외국들의 불이익이 커지고 있는데 따른 것이다.

금융시장 측면에서는 채권과 주식에 관련된 금융인프라가 런던 시장에 비해 프랑크푸르트와 파리 시장이 앞서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앞으로 EMU가 정착되면 될수록 이런 추세가 심해질 것으로 대부분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 유로랜드는 갈수록 확대될 전망 =올들어 유럽경제가 전반적인 둔화의 움직임을 나타내고 있음에도 유로랜드의 확대는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이미 올 1월에는 그리스가 유로랜드에 편입돼 참여국이 모두 12개국으로 늘어났다.

다음달 총선을 앞두고 영국의 유로랜드 가입문제가 선거쟁점화되고 있으나 갈수록 유로랜드 조기참여설이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다.

올해안에 영국이 유로랜드에 참여한다면 덴마크 스웨덴도 자동적으로 가담할 것으로 보여 유럽연합(EU) 회원국 전역으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상춘 전문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