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천년 첫 대통령을 뽑는 이번 미국 대선은 "40년만의 접전"이란 수식어를 뛰어넘는 대혈전이었다.

사상 초유의 재검표 사태까지 불러 일으킨 곳은 플로리다주였지만 다른 경합주의 선거 역시 여기에 못지 않는 혼전이었다.

이번 선거에서 공화당의 조지 부시 후보는 전국 지지율에서 48%를 얻어 49%를 얻은 민주당 앨 고어 후보에게 1%포인트 차로 뒤졌다.

그러나 플로리다의 선거인단 25명을 차지하면서 과반수이상의 선거인단을 확보할 가능성이 높다.

전국 지지율에서는 지고도 대통령에 당선되는 "소수파 대통령(minority president)"이 될 공산이 큰 상황이다.

고어 후보가 전국 지지율에서 지고도 선거인단 과반수를 확보, 대통령에 당선될 가능성을 점쳤던 선거 전문가들의 시나리오와는 정반대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민주당의 고어 후보는 미국 50개주와 1개 특별구중 최다(54명) 선거인단이 걸려 있는 캘리포니아를 비롯 뉴욕(33명) 펜실베이니아(23명) 등 해안 근처의 대형주를 휩쓴 반면 공화당의 조지 부시 후보는 중부와 남부를 중심으로 한 보수적인 성향의 지역을 차지했다.

캘리포니아주에서 부시 후보는 수백만달러를 투입, 막판 공세를 벌이면서 선거전날 여론조사에서 오차범위내로 따라붙었지만 결국 패배하고 말았다.

고어 후보가 흑인과 중남미계 등 소수민족의 압도적인 지지를 얻은게 주효했다.

이번 선거의 판세를 가를 대형주로 주목받았던 펜실베이니아, 일리노이(22명), 미시간(18명)주도 고어 후보의 손을 들어줬다.

반면 오하이오(21명)와 미주리(11명), 고어의 고향인 테네시(11명)주는 부시 후보가 차지했다.

오하이오, 펜실베이니아, 미주리, 델라웨어(3명), 웨스트버지니아(5명) 등 선거인단 수는 적지만 승리의 전조를 알리는 "점쟁이 주(州)"들도 초미의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이례적인 대혼전이 벌어진 이번 선거에서는 이들 주의 "신통력"도 떨어졌다.

지난 60년이후 한번도 빼놓지 않고 승자를 뽑았다는 델라웨어와 미주리주중 델라웨어는 고어 후보, 미주리는 부시 후보가 각각 나눠 가졌다.

전통적으로 민주당 텃밭인 웨스트버지니아주는 공화당 후보가 차지한 해마다 반드시 공화당이 압승했다는 징크스를 갖고 있어 눈길이 모아졌다.

그러나 부시 후보는 여기서 이기고 압승과는 거리가 먼 접전을 벌였다.

64년이후 1백% 정확률을 자랑한다는 오하이오주에서는 부시 후보가 이겼지만 아직 당선자가 확정되지 않아 명성이 유지될지 두고 봐야 할 일이다.

선거 전문가들중에서는 펜실베이니아, 미시간, 미주리 등 3개 경합주중 2개이상의 주를 차지하는 후보가 승리할 것이라고 점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펜실베이니아와 미주리주를 차지한 고어 후보의 승리는 요원하다.

전통적으로 보수색채가 강한 펜실베이니아에서는 낙태 등에서 진보성향을 띤 여성 유권자들의 압도적인 지지에 힘입어 고어 후보가 승리했다.

녹색당의 네이더 후보가 고어 후보의 표를 갉아먹는 바람에 부시 후보가 어부지리를 얻을 것으로 예상됐던 오리건(7명)과 워싱턴(11명), 위스콘신(11명)주 중에서 워싱턴주만 고어 후보가 승리했을 뿐 나머지 오리건과 위스콘신주는 부시 후보의 승리로 돌아갔다.

고어 후보의 고향인 테네시(11명)와 클린턴 대통령의 고향인 아칸소(6명) 역시 경합주로 분류됐으나 이들 주는 모두 고어 후보와 클린턴 대통령에 등을 돌리고 부시 후보의 손을 들어줬다.

아칸소에서는 섹스 스캔들로 클린턴 대통령의 인기가 급락한게 고어후보에게 악재로 작용했다.

테네시주에서는 전통적인 공화당 색채가 강한데다 고어 후보가 워싱턴DC에 밀착된 정치인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부시 후보쪽으로 돌아섰다.

노혜령 기자 hr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