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모란은 5선을 자랑하는 미국 민주당출신의 연방의회의원이다.

그가 요즈음 치욕적인 구설수에 시달리고 있다.

테리 리어만이라는 친구에게서 2만5천달러를 빌린 것이 화근이 됐다.

우리 돈으로 채 3천만원도 안 되는 금액이다.

거저 받은 돈도 아니고 엄연히 차용증서를 써주고 얻은 빚에 불과하지만 공직자 윤리라는 엄격한 잣대위에선 치명적인 독직(瀆職)일수 있는 게 미국이다.

모란 의원은 이자(연 8%)도 꼬박꼬박 갚아가고 있는 중이다.

얼마든지 있을수 있는 개인간의 돈거래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미국사람들은 그렇게 보지 않는다.

모란은 연방의회의원이라는 공직자이며 따라서 공직자가 지켜야 할 엄한 공직윤리의 틀을 벗어난 것 아닌가 하는 사시(斜視)를 받고 있는 것이다.

모란 의원이 의심을 받을 만한 구석은 적지 않다.

우선 돈을 빌린 시점(99년 6월25일)이 모란 의원이 쉐링플라우라는 제약회사가 생산하는 클라리틴(알레르기 치료약)의 특허권 유효기간을 연장하기 위한 법안을 제출한 시점(99년 6월 30일)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 시기에 그의 오랜 친구인 리어만은 쉐링플라우의 로비스트로 활약하고 있었고 그에게서 돈을 빌린 것이다.

따라서 이 돈은 ''친구가 아닌 로비스트에게서 빌린 돈''이라는 게 미국인들의 시각이다.

물론 모란 의원은 "클라리틴의 특허유효기간 연장법안을 제출한 것은 이 약의 시판이 늦어졌기 때문에 그만큼 더 연장해 줄 필요가 있었다"며 결백을 주장한다.

친구인 리어만도 "특허연장과 돈을 빌려 준 것은 무관한 일"이라고 주장하지만 미국인들은 수긍하는 눈치가 아니다.

차용증서에 상환기간이 명시되어 있지 않다는 것도 시비거리다.

언제 갚는다는 조건이 없는 차용증서는 상궤를 벗어난 돈거래라는 시각이다.

이자 8%를 문제삼는 사람도 많다.

돈을 빌린 시점에 형성된 무담보대출자금의 시중은행금리가 연 12.5%였으니 차용증서상의 이자 8%는 4.5%포인트나 싼 특혜자금이었다는 지적이다.

모란 의원은 지난 5월15일 의회에 제출한 공직자재산공개 내역에서도 이 2만5천달러의 부채를 누락시켰다.

"왜 누락시켰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깜빡 잊었다"고 대답했지만 실제로는 의회 공직규범위원회에 이 빚을 공개해야 하는지 여부를 서면질의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고할 필요가 없다는 변호사의 조언에 따른 것이었지만 당연한 신고대상이라는 의회의 유권해석에 따라 7월31일 뒤늦게 추가등록한 것으로 밝혀졌다.

돈을 빌릴 당시 모란 의원은 심한 재정난에 허덕이고 있었다.

94년 암으로 투병하고 있던 딸은 연봉 13만6천7백달러에 불과한 그의 재정상태를 극도의 궁핍으로 몰아넣었다.

매달 내야 하는 집세와 딸의 치료비로 진 빚을 갚고나면 실제 생활을 꾸려갈 현금은 2천달러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결국 부부간 불화와 이혼이 불가피했다.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상황이었고 모란 의원은 곤궁탈피와 공직윤리 사이에서 번민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같은 내막을 파고든 미국인들은 2만5천달러의 돈이 왜 필요했는지에 동정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인들의 냉정한 공직의식은 클라리틴이라는 약에 대한 독점적 특허권 연장이 미국 소비자들에겐 10년동안 73억달러에 달하는 손해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묻어 두려 하지 않는다.

다만 이런 대형입법(大型立法)의 대가가 ''3천만원도 안되는 빚 얻어쓰기''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우리 공직사회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자못 궁금하다.

툭하면 수억원,심지어 수백억원의 뇌물이 오가고 금융감독원 관리가 자살까지 해야 하는 우리네 현실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얘기일 뿐이다.

양봉진 워싱턴 특파원 yangbongji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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