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금융재생위원회는 태어난 배경과 시기가 한국의 금융감독위원회와 비슷하다.

금감위가 외환위기의 와중에서 금융시스템 대수술을 위해 설립됐듯이 금융재생위는 일본의 대형은행과 증권사들이 맥없이 무너지고 금융계가 벼랑에 몰렸을 때 모습을 드러냈다.

위기대응 조직으로 태어난 만큼 주어진 권한은 막강하다.

공적자금 투입이나 금융기관 파산 여부가 위원회의 말 한마디로 오락가락하게 돼있다.

페이오프(부실금융기관을 대신해 정부가 예금을 지급하는 보호장치) 동결의 해제여부도 결정권은 금융재생위가 갖고 있다.

자연 장관급인 위원장에 쏠리는 시선은 상당하다.

위원장은 금융계 수술을 총지휘하는 의사이며 ''일본주식회사'' 에 대한 외국의 신용평가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이같은 요직의 주인이 올들어 벌써 세 번이나 바뀌었다.

경질 이유도 제 각각이다.

지난 2월에는 오치 이헤이 위원장이 "검사받을 때 힘들면 내게 말하라"는 묘한 말을 했다가 구설수로 자리를 물러났다.

그 뒤의 다니가키 사다카즈씨는 개각으로 단명했다.

30일 사임한 구세 기미다카 위원장은 은행과 건설업체로부터 거액 편의제공과 헌금을 받은 것이 들통나 낙마했다.

7월 4일 입각 후 26일만의 초단명이다.

신임 위원장의 얼굴이 확정된 31일 일본 여론과 금융계는 들끓고 있다.

금융계는 "환부를 도려내기 위해서는 개혁적 전문가가 필요한데도 왕초보 아니면 수구파를 기용하고 있다"며 아이자와 히데유키 신임위원장의 반개혁 성향을 주목하고 있다.

모리내각의 최고령(81)인 아이자와씨는 이업종의 은행업 참여를 반대하고 페이오프를 더 동결시키자는 등 보수 색깔을 분명히 해왔다.

금융계는 따라서 일본경제에 대한 외국의 불안과 불신이 가중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요직의 주인을 교체하면서도 민심과 동떨어진 카드를 거푸 내놓은 자민당의 거꾸로 가는 인사는 정치가 경제회복의 걸림돌임을 다시 한번 보여주는 사례에 다름 아니다.

도쿄=양승득 특파원 yangs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