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지평선을 넘어 가기도 전인 오후 6시.

런민(人民)공원 앞 상하이시 박물관을 시작으로 상하이는 조명의 도시로 변한다.

고층 건물의 조명시설이 작동하고 입간판의 불이 반짝이면서 낮과는 또다른 밤의 상하이가 탄생한다.

화려한 네온사인 사이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차이나텔레콤의 ADSL광고판.

수도 많지만 크기도 엄청나고 화려하기도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다.

"ISDN요. 상하이에선 이미 한물 갔다고 봐야죠. 작년부터 기업은 물론 가정에서도 ADSL 열기가 한창입니다"

의학정보 인터넷사이트인 킹헬스닷넷(www.kinghealth.net)을 운영하는 장젠쥔 사장은 상하이의 인터넷열기를 ADSL로 설명한다.

부나방이 불을 보고 달려들 듯 인터넷열기는 새로운 아이디어로 충만한 젊은 도전자들을 상하이로 불러들이고 있다.

푸둥 장장(張江)하이테크단지안에 있는 소프트웨어파크에서 만난 피터궈(Peter Guo).

까만 나이키모자를 눌러쓰고 청바지 뒷주머니에 핸드폰을 꽂은 모습이 영락없는 "서울의 신세대"다.

종업원이려니 하는 생각은 명함을 받아드는 순간 사라진다.

"상하이 하이컴퓨터시스템즈 CEO"

베이징대 지질학과 93학번.

올해 겨우 스물넷.

대학시절을 컴퓨터에 묻혀 지낸 덕분에 컴퓨터화면의 선명도를 높여주는 화상프로그램을 개발할 수 있었다.

1997년 졸업무렵 이래저래 손에 쥔 1백만위안(1억2천만원)을 갖고 지금의 회사를 차렸다.

이른바 벤처창업자다.

그로부터 2년 남짓.

이제 그는 이 부문에선 손꼽히는 "사장님"이 됐다.

자산규모는 2천만위안(24억원)으로 20배로 늘어났다.

본사인 상하이 사무실의 직원은 20명.

여직원 둘을 빼면 모두 연구인력이다.

베이징에도 비슷한 규모의 사무실이 있다.

펩시콜라 신은만국증권 보산철강 등 내로라하는 기업들이 그의 고객이다.

궈 사장은 "12시간은 기본이고 16시간 일할 때도 많다"며 "지난 노동절 휴일때도 하루도 쉬지 않았다"고 털어 놓는다.

밤낮없이 일하는 것이 성장의 비결이란 얘기다.

직원들에게 성과에 따라 주식을 나눠 주는 "격려체계(이른바 스톡옵션)"를 도입한 것이 쉼없는 작업의 원동력이란다.

중국에도 벤처열풍이 한창이다.

궈 사장같은 젊은 벤처사업가가 부지기수다.

그를 비롯한 "젊은 사장님들"의 목표는 한결같다.

바로 뉴욕 나스닥증시 상장이다.

이들이 지금 상하이로 몰려들고 있다.

궈 사장도 작년에 본사를 베이징에서 상하이로 옮겼다.

물론 중국의 IT(정보기술)산업의 대명사는 여전히 베이징 중관춘(中寬村)이다.

그러나 최근엔 상하이 장장소프트웨어단지가 뜨고 있다.

소프트웨어파크를 기술적으로 총괄하는 천쥐 부사장은 "장장소프트웨어파크는 중국정부가 실험적으로 운영하는 정보통신기술 개방센터"라며 "베이징에 먼저 IT관련 기업과 연구소들이 집결했지만 시장잠재력이 이들의 발길을 상하이로 돌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수쯔(數字,digital) 상하이"

쉬쾅디 상하이시장은 올초 열린 제9회 12차 인민대표대회 정무보고에서 이렇게 선언했다.

이를 위해 생산액이 1억위안을 초과하는 1백개의 기술형 중소기업(小巨人)을 집중 육성하고 첨단기술기업 약 1천개를 지원키로 했다.

이를 뒷받침하기라도 하듯 지금 상하이엔 디지털열풍이 불고 있다.

"중국 하이테크산업의 선두엔 상하이가 있다"는 주룽지(주용기) 중국총리의 말이 실감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기업들이 화인(華人)네트워크 구축과 함께 온라인분야의 중화패권을 경계하면서 전략을 가다듬어야할 때(김종근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연구위원)"가 바로 지금이다.

[ 특별취재팀 = 정동헌(영상정보부) 한우덕(베이징특파원) 하영춘(증권1부) 차병석(벤처중기부) 박민하(경제부)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