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시내를 가로 지르는 황포강 잘룩한 허리에 우뚝 솟은 동방명주탑에서
조명 밝힌 밤거리를 내려다 본 사람 치고 그 도시를 사랑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러나 여느 도시처럼 그 안에는 "생활"이라는 것이 있고 "한"도 있기 마련
이다.

이런 단순한 진리를 새삼 일깨워준 사람은 상하이에서 만난 조선족이었다.

옌볜 출신 김길웅(31)씨는 5년전 상하이에 왔다.

제일 잘 하는 것은 태권도.

3단이라는 공인은 같은 조선족이 운영하는 태권도장에서 밤마다 사범 역할을
할 수 있게 해 줬다.

낮에는 KOTRA(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주선으로 통역을 맡고 있다.

물론 일이 없는 날이 더 많다.

닥치는 일은 무엇이라도 한다.

한국법률사무소 사무장 일도 하고 몇 달전에는 한국에서 온 "아나키스트"
영화촬영팀의 통역과 시내관광 가이드도 맡았다.

"중국의 짚시" 돈이 되는 일이라면 대륙 어디라도 찾아 헤매는 조선족에게
붙여진 서글픈 별명이란다.

그러나 그는 "집시는 강인한 생명력의 또다른 이름"이라고 말했다.

중국에서도 유독 이민족에게 배타적인 것으로 이름난 상하이로 흘러온 그가
비교적 빨리 정착하게 된 비결이다.

"직장 상사가 상당히 엄격한 모양이예요"

그가 처음 던진 질문에 한참 마땅한 대답을 찾지 못했다.

"한국에서 온 사람들은 조선족들을 종 부리듯 합니다. 한때 한국기업
상하이 공장에서 일할 때 한국에서 부임한 임원이 사람 다루는게 보통
엄한게 아니었거든요"

그가 만났던 한국인과는 다소 다른 부드러운 태도가 의아했던 모양이다.

고향 옌볜 이야기가 뒤를 이었다.

"한국에서 온 사람은 특히 술주정이 심합니다. 요새 옌볜 술집 주인들은
한국사람이 술을 먹다가 소란을 피우는가 싶으면 동네 건달들에게 전화를
합니다. 혼 좀 내주라는 것이죠"

김씨는 약간 흥분한 듯 했다.

"한국사람들에게 속은 적이 한두번이어야죠"

사기치고 달아나거나 돈 있다고 거드름피우는 모습이 김씨와 같은 많은
중국내 조선족들에게 각인된 "추한 한국인"의 모습이다.

이국동포들에게 보여준 것이 졸부근성뿐이라는 사실에 서글픔이 밀려왔다.

최근 속속 알려지는 중국에서의 한국인 납치 폭행사건이 단순히 열악한
중국의 치안사정 때문만은 아닌 듯 했다.

< 상하이=박민하 경제부 기자 hahaha@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3월 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