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와 세계은행 고위관료들이 줄줄이 자리를 뜨고 있다.

미셸 캉드쉬 IMF총재의 퇴진이 이미 발표된 데 이어 스탠리 피셔 수석부총재
도 곧 자리를 물러날 예정이다.

사정은 세계은행쪽도 마찬가지.

수석 이코노미스트이자 부총재인 조세프 스티글리츠가 조기 사임을 밝힌 데
이어 장 미셸 세베리노 아태담당 부총재와 휴버트 나이스 아태국장도 내년
1월과 3월 각각 사임, 각자의 고국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세계은행이 5일
발표했다.

썰물 같은 이들의 사임이 우연의 일치일 수는 있다.

하지만 스티글리츠 부총재의 사임은 우리의 특별한 관심을 끈다.

그는 IMF와 미 재무부의 경제철학과 정책을 강하게 비판해 온 저항세력이었
기 때문이다.

아시아 위기가 닥치자 IMF와 미 재무부는 해당국에 대해 고금리유지를
강요한 반면 스티글리츠는 고금리가 기업인들의 투자의욕을 꺾어 경기침제를
유발할 뿐이라고 맞선 것으로 유명하다.

국제적 단기자금 이동에 대해서도 IMF와 미 재무부는 지구촌 모든 국가들이
아무 제한없이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스티글리츠는 각국의 상황에
따라 적절한 제한을 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었다.

모든 대외언로가 통제돼 있는 IMF와 세계은행의 문화에선 수용되기 어려운
단면이었다.

그의 막내아들이 내년 봄 고등학교를 졸업하기까지는 워싱턴에 머물려고
했던 스티글리츠가 갑자기 내년 1월1일자로 사임키로 한 배경에는 그의 입에
재갈을 물리려는 로렌스 서머스 재무장관의 압력이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물론 당사자들은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예정보다 조기 퇴진하는 심경을 기자들에게 밝히는 자리에서
스티글리츠는 입에 재갈을 무느냐(to be muzzled) 아니면 자리를 뜨느냐의
기로에서 사직하기로 한 것일 뿐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한 지식과 실제 적용 사이에는 많은 갭이 있다고 부연함으로써
학문적 양심과 강요된 침묵 사이에서 번민해왔다는 일단의 심경을 내비쳤다.

하버드 출신의 로렌스 서머스 재무장관, MIT 출신의 스탠리 피셔 IMF 수석
부총재, 그리고 스탠퍼드 출신의 스티글리츠 모두 학문적으로 잘 다져진
사람들이지만 그 지식체계가 인간적 내면의 소리, 그리고 외부현실세계와
용해될 때는 각기 다른 화학작용을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물론 음대입시와 공사입찰 과정에서 부정한 돈을 챙긴 일부 한국 교수들과는
전혀 차원이 다른 세계의 논쟁거리지만.

< 워싱턴=양봉진 특파원 bjnyang@aol.com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