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이안트 판다 싱싱이 죽었다.

워싱턴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던 싱싱이 신장질환으로 극도의 고통을
느끼고 있다고 판단한 국립동물원 수의사들이 지난 주초 그를 안락사
시키기로 한 것이다.

1972년 리차드 닉슨 전 미 대통령의 중국방문을 기념하기 위해 중국정부가
기증한 숫놈 싱싱과 암놈 링링(92년 먼저 죽음)은 만화 영화속의 뮬란,
그리고 핑퐁외교와 함께 미국인들의 대중국 관계에 대한 많은 은유과 상징을
담고 있다.

싱싱은 사람 나이로 치면 80세에 해당한다는 28년 동안 살았고 이는
여러가지 의미에서 미.중관계 현대사와 맥을 같이한다.

그동안 싱싱과 링링은 다섯 마리의 새끼를 가졌지만 모두 죽고 말았다.

암놈의 발정기간이 1년에 3일밖에 안되기도 하지만 자연이 아닌 인위적
환경속의 부부관계는 건강한 판다 새끼를 생산하기 어렵다는 또 다른
실험증거를 보탰다.

이는 지구촌 주도권경쟁을 벌이고 있는 미.중관계가 판다 부부의 난산만큼
이나 "쉽지 않은 관계"(클로드 바필드, AEI 연구위원)를 의미한다는 상징성을
부여하는 사람들도 있다.

실제로 지난 30년간의 미.중은 어려운 관계를 유지해왔다.

최근관계만 돌아보더라도, 주 유고슬라비아 중국대사관에 대한 미국의 폭격,
라스 팔모스 핵기술 유출문제, 중국인의 의회의원들에 대한 로비 스캔들 등
미중관계는 최악의 상황을 연출했다.

빌 클린턴 대통령 또한 세계무역기구(WTO) 가입문제를 조기 타결 짓기 위해
지난 연초 워싱턴을 찾았던 주룽지 등 중국지도부에게 빈 보따리만 들려
보냄으로써 중국인들의 분노만 증폭시켰다.

지난달 초순까지만 하더라도, 중국의 WTO 연내가입은 회의적이며 따라서
이번 시애틀 세계무역기구(WTO) 회의의 주요의제는 "중국이 WTO에 가입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에 모아질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11월들어 클린턴의 외교자세수정과 새로운 전략채택은 중국의 가입을
기정사실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급선회시키는 의외의 결과를 가져왔다.

"더 이상의 미.중 관계악화는 누구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CATO연구소,
마크 그룸브리지 연구위원)"고 본 것이다.

중국의 WTO 가입문제가 일단락 됐고, 시애틀 WTO회의장이 비정부기구(NGO)
등의 항의장으로 바뀌었다고 해서 중국이라는 의제가 WTO의 주요 토의목록
에서 빠지게 됐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워싱턴의 입장이다.

"오히려 진짜 논쟁과 전쟁은 이제 막 시작됐을 뿐 아니라 중국이야말로
바로 이런 논쟁거리를 제공하는 주체라는 사실에도 전혀 달라진 것이 없다"
(로버트 스콧, EPI 연구위원)는 지적이다.

중국 노동자들의 열악한 처우와 인권, 소비자문제, 급격한 산업화를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는 중국의 환경정책문제 등 시위자들이 내세우는 의제와 관련해
중국만큼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회원국도 없다는 주장이다.

중국이 일단 WTO라는 테두리에 들어오게 된 이상 이제부터는 더 집요한
주시를 받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는 뜻이다.

결국 "중국은 "인간의 얼굴을 가진 자유주의"의 실현을 위해 배가 노력해야
할 것"(캐서린 달피노, 브루킹스연구소 연구위원)을 요구받고 있다.

시애틀에서의 WTO반대시위는 개막회의를 연기시키는 사태로까지 발전했다.

빌 클린턴 대통령과 샬린 바세프스키등 미국지도부도 "이들 저항세력의
목소리가 WTO의 자유무역주의라는 테두리에 건설적으로 반영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WTO가 추구하는 자유주의에 대한 신념과 대세는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이곳의 지배적 관측이다.

이런 형태의 시위는 의례 한번쯤 거쳐야하는 통과의례 정도라고 가볍게
보아 넘기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중국의 무역장벽문제 역시 "과거의 문제였을 뿐 아니라
현재의 문제이고 또 미래의 관심사항"이기는 마찬가지라는 설명이다.

싱싱이 남긴 중국에 대한 연상작용은 적지 않다.

동물원측은 새끼를 낳을 수 있는 한쌍의 대체부부를 원하고 있다.

하지만 1972년 선물로 내놓았던 중국은 이제 그 몸값으로 8백만달러를
요구하고 있다.

새천년을 맞는 미.중은 이제 "진짜 상거래관계"에 진입한 것이다.

< 워싱턴 특파원 양봉진 bjnyang@aol.com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