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룩셈부르크는 전력의 절반을 독일이나 벨기에 같은 주변국에서
공급받는다.

국토가 좁아 기본적인 것도 자급하지 못하는 나라다.

이 나라는 그러나 국가경쟁력과 국민소득에서 세계 최고수준을 자랑한다.

"소국이 잘사는 시대"란 표현이 실감나게 해주는 나라다.

그러나 룩셈부르크가 애초부터 잘 산 것은 아니다.

이 나라 수도인 룩셈부르크시티는 아주 이상하게 생긴 도시다.

험한 산의 능선과 계곡을 끼고 도시가 발달했다.

인간은 강가나 평지로부터 터전을 확장해 나간다는 상식과는 정반대다.

부침과 흥망이 격심했던 유럽의 중세를 헤쳐오면서 이 도시는 시대마다
번갈아가며 오스트리아 프랑스 독일의 영토에 편입됐다.

북부의 지브롤터란 별칭이 지어진 것은 이 무렵이다.

지브롤터 해협은 이 곳을 차지하는 세력이 곧 유럽의 맹주로 부상했다는
상징적 의미를 갖고 있다.

북부의 지브롤터란 별명은 룩셈부르크가 바로 유럽을 사방으로 연결하는
전략적 요충지임을 말해준다.

요충지는 요새로 성장했다.

새로운 점령자가 등장할 때마다 겹겹으로 두텁게 성곽을 쌓아갔다.

지금도 도시 지하에는 세계문화유산으로 보전되고 있는 수백m의 보급로와
도주로가 남아있다.

능선에서 계곡을 따라 수직적으로 발달해 온 이 이상한 도시는 금세기
이전만 해도 그저 보잘 것 없는 작은 요새일 뿐이었다.

룩셈부르크의 인구는 43만명에 불과하다.

면적도 서울과 비교될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바람에도 스러질 듯한 룩셈부르크가 오늘날 세계최고의 국민소득 수준을
향유하는 국가가 된 것은 놀라운 변신 덕분이다.

요새에 주어진 본연의 임무는 "봉쇄"였지만 룩셈부르크는 금세기 들어
"개방"으로 급격히 선회했다.

코페르니쿠스적인 변신을 꾀한 요새는 이후 2백여개 은행, 8백여개 금융기관
을 외부에서 끌어들였다.

이자소득세와 지불준비제도를 폐지하면서 자금이동을 손쉽게 한 덕분이다.

이에 힙입어 이 나라는 유럽 금융중심지의 하나로 단단히 뿌리를 내렸다.

이같은 유연한 금융정책과 함께 기업의 조세부담을 낮춰(실질법인세 8%)
제조업을 끌어들이는 데도 성공했다.

굿이어 듀폰 TDK 등 세계적 기업이 이 나라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제 외세(외국계 은행과 기업)는 두터운 성곽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탄탄한
일자리와 튼튼한 재정을 제공하면서 요새를 지켜주고 있다.

땅은 좁아도 일할 곳은 많은 나라 룩셈부르크의 모습이다.

< 룩셈부르크시티=박재림 국제부 기자 tree@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0월 2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