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레튼 피오리나.

지난주 휴렛 패커드의 새 선장(CEO)이 된 맹렬 여성이다.

그녀는 연약해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밖으로 드러난 모습일 뿐이다.

그녀가 세계 컴퓨터업계 2인자이자 지난해 외형 4백70억달러의 기업인
휴렛 패커드의 경영권을 거머쥔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명문 스탠퍼드대를 졸업하자 마자 피오리나는 UCLA에 들어간다.

판사였던 아버지의 뒤를 이어 법률가가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6개월만에 자퇴해버린다.

"과거의 판례(precedent)를 중시하는 분위기가 싫었다"는 게 그녀의 변이다.

환경변화에 대한 적극적인 적응보다는 과거의 선례와 틀에 묶여 사는
법조계라는 테두리와 분위기가 싫었다는 뜻이다.

그녀가 기업가의 제1 덕목이랄 수 있는 진취성이나 창조성면에서 남다른
진면목을 보여주었을 것이라는 점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스티브 잡스.

그는 97년 10억4천5백만달러의 손실을 보며 사경을 헤메던 애플컴퓨터를
98년 3억9백만달러의 흑자 그리고 올들어서만 무려 5억달러에 육박하는
이익을 창출하는 회사로 부활시킨 주인공이다.

천편일률적인 베이지색상의 컴퓨터에서 탈피, 화려한 색깔과 디자인으로
눈길을 끈 아이맥(iMac)을 내놓은 결과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잡스는 지난 주 기존 노트북 PC의 정형에서 벗어나
조개껍질을 닮은 노트북 PC도 내놓았다.

그는 이 노트북의 이름조차 조개껍질(Clamshell)로 불러 버렸다.

그가 내건 "다르게 생각하자(Think Different)"는 경영전략의 산물이었다.

사장은 정말 중요하다.

사장 한사람만 잘 뽑아 놓으면 회사는 제대로 굴러갈 수 있다는 속설은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다.

GE의 잭 웰치, 인텔의 앤디 그로브, 그리고 스티브 잡스 애플 사장의
성공담이 이를 말해 준다.

휴렛 패커드가 피오리나를 CEO에 앉힌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음이 틀림없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대통령 한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국가장래가 결정될 수 있다.

세상은 변하고 있다.

나이가 들수록 현명해진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정보혁명으로 하루가 다르게 세상이 바뀌고 있는 요즈음 나이 든
세대가 이를 모두 소화하고 이에 기초해서 국가와 기업의 미래를 위한 전략을
제대로 세운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총론적인 인식의 세계와 각론적인 실제 경험의 세계는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이를 의식, 온 나라가 젊은 피 수혈을 외쳐대고 있지만 지도층이 간과하고
있는 중요한 허점은 위가 바뀌지 않는 한, 아무리 많은 젊은 피를 수혈해도
별 효험이 없다는 점이다.

CEO가 변하지 않는데 과장이나 대리의 의사가 제대로 반영될 리 없기
때문이다.

변화를 주도할 수 없으면 방해가 되지 않으려는 노력이라도 기울여야 하는
것이 국가를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이 가져야 할 윤리의식이다.

요즘 한창 거론되고 있는 "후 3김시대"는 우리를 우울하고 암울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양김이 "40대 기수론"을 내건지 30년이 지났다.

양김 낚시론이 제기된지도 20년이 됐다.

그것도 모자라 이미 모든 국민이 염증을 내고 있음이 분명한데도 정치하는
사람들은 마음 비울 기미를 보이지 않은 채 더 잡고 있으려는 정치적
모럴헤저드를 고집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뚜렷하게 구분되는 3세대가 있다.

우선 30년동안 우리사회를 지배해온 286세대(50,60,70 대), 그동안 아무
역할도 주어져 본 적이 없이 그저 사라져 가고 있는 386세대(40대) 그리고
기능적으로는 우수하나 286과 386 재고에 눌려 좌절하고 있는 486세대(30대)
가 그들이다.

서울에서 온 한 사회학 교수가 우리사회를 컴퓨터 칩 개발에 빗대 구분한
결론이다.

칼레튼 피오리나와 스티브 잡스의 올해 나이는 똑같이 44세다.

세계경제를 주무르고 있는 미 재무장관 로렌스 서머스의 나이도 44세이기는
마찬가지다.

우연한 일치인지는 모르지만 "신 40대 기수론"이 뿌리내리고 이를 통해
번영을 누리고 있는 곳이 미국이다.

< 워싱턴 특파원 양봉진 http://bjGlobal.com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7월 2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