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만들지 못할 바엔 아예 만들지 않는 게 낫다".

결함있는 제품을 출시했다가 거액의 피해배상금을 물어주게 된 기업들이
잇달아 나오자 미국업계에 나돌고 있는 말이다.

피해배상액이 한두푼도 아니고 기업의 존폐를 위협할 정도로 엄청나기
때문이다.

최근 캘리포니아 지방법원 배심원은 최근 세계최대 자동차메이커인 GM에
대해 자동차연료탱크의 결함을 이유로 49억달러(5조8천억원)를 피해자에게
배상하라고 평결했다.

포드자동차도 지난 93년 78년형 브론코(스포츠카 모델)가 뒤집히는 바람에
부모형제를 잃은 후안 로모(25)에게 2억9천5백만달러를 물어주라는 판결을
받았다.

브론코의 덮개를 금속이 아닌 플라스틱으로 만든게 화근이었다.

이 차의 플라스틱지붕은 차량전복시 쉽게 찌그러들면서 탑승자에게 치명적인
위험을 주었다는게 법원의 판결이었다.

또 일본 도요타자동차는 미국정부와 무려 5백85억달러의 벌금 송사를
벌이고 있다.

배기가스감지장치의 불량이 소송의 빌미였다.

담배업계의 손해배상 예상액은 천문학적이다.

플로리다주 연방법원이 이달초 담배회사들이 최대 2천억달러를 배상금을
물어내야 할지도 모를 판결을 내렸다.

흡연 피해자및 유가족 50만명이 미국 5대 담배 회사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담배회사들이 폐암등 각종 질병을 일으킬 수 있는 결함 있는 제품을 생산했다
고 평결한 것이다.

담배회사들은 이미 올해초 미국 주정부들에게 흡연으로 인한 질병 치료비용
으로 2천60억달러를 물어주기로 합의한 상태다.

인터넷 홈페이지의 컨텐츠나 소프트웨어 등 지적 산물도 제품 결함에 따른
손해배상 소송의 대상이 되고 있다.

지난 2월 오래곤주 포틀랜드 지방법원은 반낙태주의자 인터넷 홈페이지
"뉘렘베르크"에게 1억달러를 손해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이 웹사이트가 낙태시술을 하는 의사 2백명의 명단과 주소를 싣고 있으며
살해된 의사들 이름에 십자가 표시를 하는 등 의사들에게 위협을 가하고
있다는 이유였다.

미국 청년 존 엘리자는 마이크로소프트(MS)의 출판용 프로그램 "퍼블리셔98"
이 흑인을 모독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을 보고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며
샌디에이고 법원에 7만5천달러의 손해배상 소송을 내기도 했다.

이 프로그램에 "원숭이"란 단어를 입력하면 흑인 부부가 철봉에 앉아 있는
모습이 뜬다는 것이었다.

MS도 이를 인정했으며 전문가들은 법원이 유죄판결을 내릴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제품 결함과 관련된 손해배상 소송에서 고소인이 이기는 경우가 많은 것은
미국이 제조물책임법(PL)을 강하게 적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PL이란 제품의 결함으로 소비자가 피해를 입었을 경우 제품 생산자에게
거의 무조건 책임을 지게 하는 강력한 소비자보호제도다.

이처럼 거액의 제품결함 피해배상금을 지불하라는 법원의 판결이 잇따라
나오자 기업들은 물건팔기가 겁이 난다고 아우성이다.

앞으로 우리나라 기업들도 같은 사정에 처할 가능성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PL법이 곧 발효되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 법을 오는 2001년부터 시행한다고 최근 입법 예고했다.

< 김용준 기자 dialect@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7월 15일자 ).